(16세기 중엽~17세기 중엽)
맹아기(17세기 중엽~18세기 중엽)
전성기(18세기 중엽~19세기 중엽)
특 징
2.2.1.북학 사상의 형성
양란 이후 실용적 학문에 대한 필요성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 형성
* 박지원, 홍대용 등 선구적 실학자 들이
북학파 형성, 주도적 역할
북학파)를 망라하고 있으며, 1세기의 준비, 1세기의 맹아, 1세기의 전성을 갈라놓아 실학의 흥망성쇠를 시간계열 속에 정립시켰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조선실학의 개척자 10인』에서는 유형원이 한 번 나옴으로써 실학은 '학'으로서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이익이 한 번 나옴으로써 실학은 '학파'로
대한 불만을 해소했다.
1771년(35세) 이후에는 이러한 갈등과 좌절을 극복하고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며 조용히 물러나 실학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홍대용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과 수시로 왕래하며 교분을 두텁게 하였다. 이들과 함께 고금의 치란, 흥망, 제도의 개혁,
임진왜란을 거치고 이어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사회는 반상의 신분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사회변혁을 거치기 시작했다.
양란의 결과, 농경지가 황폐화되었고 조정에서는 묵은 밭의 개간을 적극 장려했다. 이를 기회로 지배층의 대토지 소유가 가능했다. 따라서 대다수의 농민은 토지를
북학파(중상학파, 이용후생학파) 실학사상의 개념
조선 후기 실학의 한 분파로 상공업 발달을 중시한 학파로서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 북학파(北學派)라고도 한다. 실학은 조선 후기 특수한 사회적경제적 상황 속에서 산출된 사상으로서 무엇보다도 공리공담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 실제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