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판단의 가치기준은 역사서를 읽거나 역사적 사실이 담긴 각종 매체를 접하는 독자 혹은 청자의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승만과 김구의 활동을 알아보고 두 인물의 상반된 정치 성향을 곱씹는 작업은 스스로의 가치판단 기준이라는 주관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Ⅰ. 머리말
김구와 이승만은 파란만장한 식민지시기를 거쳐 현대사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이 위기를 겪을 때는 구국활동에 힘을 기울였고, 일제 식민 통치 하에서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주력하며 같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현대로 들어오면서 두 사람의 노선은 완전히 다른 방향
한국위원단 면담에서 단독선거 반대
1949. 06.26 :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
1962년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우리가 분단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 한 가지는 바로 해방직후 분열된 정치를 통일 시키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는 해방 후 5년간 김구와 이승만의 활동에 주목하여, 이승만
한국근대사(근현대사)의 성격
1. 일반성(세계사적 보편성)
1) 봉건사회로부터 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
2) 이행조건
0.하부 : 농업 생산양식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전환
0.상부 : 부르조아 혁명과 그 정치적 과제로서의 근대국가건설
* 정치는 국민국가로, 경제는 자본제로, 사회는 횡적인 평등
근대사를 ‘반제, 반침략의 역사’로만 이해하고 경제사적 부분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적 의미에서만 근대사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미비하게 다루게 되고 이러한 전개 속에서 현대사 이후에도 저항과 민족의 역사 서술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② ‘약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