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Ⅱ. 한국해방기문학과이념한국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나, 사상과 이념의 분열 대립 속에서 열강의 정치적 책략에 휩쓸려 남북한의 분단을 면할 수 없게 된다. 해방 직후 정치적 측면에서의 좌우 세력의
문학건설본부」라는 새로운 간판이 걸렸다. 林和․李太俊․金南天․李源朝 등의 主動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누구도 이들의 행동을 막지 않았고, 이들이 내세운 「조선문학건설본부」가 어떤 이념을 내세우고 어떠한 문학운동을 전개해 나아가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오
문학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문학과 관련된 문화적 상황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한국어 사용의 공적금지’를 들 수 있다. 1938년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중학교의 조선어 과목을 정과에서 수의과목(隨意科目)으로 변경시킨 일제는, 1940년 2월 창씨제도를 실시하고, 드디어 1942년 한국어 교수(
한국어의 공적 사용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까닭에 한국어를 매체로 한국문학이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항일의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도 허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군국주의를 지지하고 찬양할 것을 요구했다.
(2) 암흑기의 시문학
이 시대에서는 항일운동을 하다가 옥사하면서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차지하게 한다. 그러한 이유로 1950년 전과 후의 문학은 역사적, 정치적 의미와 그 맥락을 같이하였다. 따라서 그 당시 작가들에게도 작품 활동에 있어서 식민지 청산이라는 과업은 부여된 것이다. 또한 당시의 양분화 된 이데올로기는 문학에 있어서도 자연히 대립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