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을 아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다. 홍여구(1990, p. 310)는 「한양가」가 가지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한양가」는 중세 한국 문화의 중심지였던 한양의 여러 풍습과 세태를 다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당시 예술사의 단면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양가」는
풍속을 아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다. 홍여구(1990, p. 310)는 「한양가」가 가지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한양가」는 중세 한국 문화의 중심지였던 한양의 여러 풍습과 세태를 다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당시 예술사의 단면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양가」는
조선시대 문학작품의 독특한 흐름을 알 수가 있다. 가사의 형식은 3·4 또는 4·4조의 연속체, 8·8조의 연속체 등으로 되어 있어 자유롭게 작가들이 만들어 가사를 통해 작가의 희로애락을 한눈에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사문학은 선비로부터 시작하여 일반 서민들도 자유롭게 접하고 작품을 남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작자층의 확대가 이루어져서 서민층과 양반의 부녀자층까지 가사를 짓고 즐기게 된다. 또한 개화기를 전후해서는 여러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가사를 통해 개진하기도 하였다.
양반사대부에서부터 서민 ․ 부녀자층까지 다양한 작자층을 확보했던 가사는
본격적인 궁녀제를 시행, 조선시대에는 구체적으로 그 체제를 정립하기 시작하여 나아가 조선 왕조 말까지 그 제도가 유지되었다.
2) 궁녀의 범주와 명칭
궁녀란 궁궐 안에서 살거나 근무하는 여자들이다.
<대전회통>에 따르면 궁녀란 ‘궁중여관’의 별칭으로 궁중에 머물면서 일정한 지위와 월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