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었다는 점에서 천도교와 관련된 지회는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Ⅱ. 항일전쟁(항일독립전쟁)의 과정
종교로 본 항일전쟁 제1기의 역사는 확실하게 유림(儒林)의 세력이 주도하는 유교(儒敎)의 항일전쟁시대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함포외교에 의한 강화도 강제수호조약 체결로부터
시찰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정책에는 당연히 근대적 문물에 대한 지식 이 있는 인사들이 필요하였으므로 개화파들은 자연히 정부안의 여러 직책에 임용되기에 이르렀다.
개화파들은 개혁사업을 통해 고종에 접근하여 그를 개명시켜 근대적 개혁에 앞장서도록 만들고자 하였고 또 개화파들
. 즉 일제 군경을 산간 험지로 유인한 뒤 유리한 지형지세를 이용, 기습공격을 가한 뒤 신속히 철수하는 것이 의병의 전형적인 전법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후기로 갈수록 기동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단위 부대의 성원수가 수백, 수십 명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10여명에 불과한 부대도 많았다.
시민들이 지역공동체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반성을 하고 또 이를 시정부에 요구해나가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시민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2004년 2월 대만 현지인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사구운동이 과거와 같은 대립적 운동은 아니지만 기존의 분파적인 지방세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