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의 의미
서원이 사림들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 세워진 사립학교였다면, 향교는 정부가 세우고 지원했던 지방의 사립 중등학교였다. 향교는 오늘날의 공립 중·고등학교로,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보다는 낮은 단계의 교육 기관이었다. 향교는 중앙의 성균관보다는 낮은 학교로서 한양의 사학(
Ⅰ. 조선시대의 교육기관 성균관
입학자격
- 원칙적으로 생원, 진사였다.(소과 합격자)
정원
- 원칙적으로 200명(국력에 따라 150, 100명일 때도 있었다.)
교원
- 지사, 부지사(관리직), 대사성, 사성, 사예, 직강, 전적, 박사
성적 평가
- 예조에서 행했다.
성적 평가의 방법
- 대통, 통, 약통, 조통, 얼
향교의 운영에 큰 지장이 생겼다. 결국 향교는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육 기관의 기능을 잃고 점차 돈 있는 지역 유지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명분의 장소로 전락해갔다. 하지만 선비들의 활동과 특권을 보장해 주는 중요한 향촌기구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2. 향교의 생활
향교는 서
Ⅰ. 향교의 의의
고려시대부터 뚜렷한 체제를 갖추게 된 우리나라의 학제는 조선조에 이르러 완비를 보게 되었다. 학제의 기간을 이루는 것은 국가가 직접 설립 경영하는 성균관과 4부 학당이 중앙에 있었고, 지방에는 지방관청이 경영하는 향교와 사적으로 운영되던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사대부의
운영하였고, 五部學堂으로 개편하고 난 후에는 儒學교수관이 파견되어 교육을 전담하였다. 東․西學堂도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學田을 받아 운영하였을 것이며 , 교관에게는 月俸이 지급되었던 것 같다.
학당교육의 성격에 대하여는 恭愍王원년 4월에 進士 李穡이 “지방의 향교와 중앙의 학당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