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을 <수호전>의 모방작이라고 논평하였다. 허나 이 소설이 결코 <수호전>의 모방작이 아니라는 것은 작품의 소재, 주인공 홍길동의 형상이나 활빈당의 활동 등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허균은 적서차별대우폐지를 주장하면서 집권층의 비위를 거슬렀으므로 1610년
허균이 지었느냐 하는 문제는 학계의 큰 쟁점이 되어왔다. 이러한 저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방향에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의 방법이 ‘허균의 사상’을 살피는 일이었다. 곧 허균의 사상이 「홍길동전」의 작품적 의미와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이는 그의
허균의 삶과 <홍길동전>의 내용 사이의 거리, 허균의 처형시 이 작품의 창작에 관계된 죄목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작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허균의 사상과 연계해 볼 때, 우리는 <홍길동전>이 허균의 작품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허균이 반역을 꾀하는 무리와 함께 <수호전(水滸
홍길동전』은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홍길동전』에 대해서 그 동안 학계에서는 간간이 작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으나, 작자가 허균이라는 설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홍길동전』의 작자 문제에 대해 고심해 보도록 하자.
『홍길동전』의 작가 논의는 크게 17세
.[7] 네 건 모두 사람이 죽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황당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수령들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감영으로 올려보낸 것들이었다.
이 장에서는 국문3고소설론과작가-강의와 교재에 소개된 고소설 작가 네 사람김시습허균김만중박지원의 문학관 및 작품 등에 관하여 설명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