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설이란 말은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던 것인데, 1906년 ‘대한매일신보’의 광고에 처음 등장하였고 이듬해 ‘혈의 누’가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면서 ‘新小說 血의 淚’라고 표지에 기재함에 따라 이후부터 보편적이게 사용되어졌다. 이인직을 비롯하여 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이전의 고대소설과
문학과의 영향 관계가 강조되면서 개화 사상의 친일 적 요소가 비판되고 신소설의 개화 사상이란 육체화되지 못한 장식적인 것이며, 등장인물을 개화 인물로 설정한 것 외에는 구소설의 영웅소설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구태의연함에 더 강조를 두는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
이인직을 비롯
신소설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것에 더 강조를 두어 개화 사상의 표출과 장면 제시나 시간의 역전 등에서 근대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의 민족주의적분위기에서 전대 문학과의 영향 관계가 강조되면서 개화 사상의 친일 적 요소가 비판되고 신소설의 개화 사상이란 육체화되지 못한 장식적인
혈의 누》 등이 있으며 개화사상을 고취하고 갈등과 성격 묘사, 그리고 사실적 문장을 처음으로 구사하였다. 즉, 이인직의 <혈의 누> 국문학사적 의의로는 신소설의 효시, 고전소설에서 근대소설로 발전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인직의 행적은 당대의 친일, 친미 지식인들의 한계
이인직이 신지식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미신을 타파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이제 서구의 과학을 믿고, 신문물을 받아드려야 할 시점에서 아직도 미신을 믿을 것인가, 까마귀가 울어도 좋은 소식이 왔다. 무지한 국민들아! 이제 그런 미신 따위는 믿지 말고, 교육받아서 의식을 계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