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반하여 보이스의 조각은 행위예술로부터 파생
보이스는 부분적으로는 백남준이나 케이지 등을 통해플럭서스와 깊은 연관관계를 가짐.
그러나 다른 한편 조각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의 개인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특정한 미술운동이나 성향과 연관시키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임.
아르테 포베
미술적인 형식을 띨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과 흡사한 1960년대의 정신적인 고갈에서 많은 젊은 미술가들은 반물질적인 태도로 작품을 만들었다. 즉,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은 조형예술을 추구하였다. 산업적으로 조립된 회화와 조각은 미술에서 점차적으로 ‘손재주’가 제거당하는 구체적인
보급과, 세계 대전 등의 보수화 경향 및 사상적 대립에 의한 정체기
●1940년대-전쟁의 종결과 신건축의 보급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근대건축이 성립
●1950년대-1940년대 중반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근대건축의 주요 이론과 역사의 확립
●1960년대-새로운 이상적인 모델의 추구와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
미술에 동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도 아직까지 크게 각광받지는 못하고 있던 팝 아트가 직접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전시는 1962년 시드니 자니스 화랑에서 열렸던 <뉴 리얼리스트>전이었다. 이 전시 이후 모마를 비롯한 미술관과 미국의 이론가들은 이런 경향의 미술을 미국과 나아가 세
조각 등을 통해 예술 작품이나 잡화 모두 상품일 뿐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는 미술 시장이 단순한 시장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상품으로서 미술 작품의 지위는 그것의 교환 가능성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며, 예술작품까지도 소비되는 기호로써 존재하게 된 사회구조를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