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정권 하의 작품 경향, 호스티스영화 등장 배경>
이 시대에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손쉽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벼운 내용의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는데, 최루성 멜로드라마나 하이틴 영화들이 만들어지지만, 이들 영화에서도 당대의 리얼리티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 영화의
영화산업을 둘러싼 70년대
기존의 한국영화사는 1970년대 한국영화를 비관적으로 분석한다. 극장가는 국적 불분명의 무협물과 하이틴 영화, 벗기기 호스티스영화 등 낮은 질적 수준의 영화들이 점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70년대를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면 실제로 존재했던 엄연한 역사이고 유
영화에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에서 영화는 1905년 영미연초회사가 담배를 팔기 위해 활동사진을 보여 준대서 시작 되었다. 이 전에 1987년에 에스터하우스라는 런던 타임즈 기자가 밝힌 극동사진에서도 활동사진을 들여왔다는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1905년으로 본다. 당시 영
70년대 한국 영화의 여자 주인공들은 대체로 여공이나 매춘부나 호스티스였다. 박호태의 <나는 77번 아가씨>와 같은 호스티스영화들은 산업사회의 대세에 떠밀려 도시로 밀려든 여성들의 삶이란 소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호스티스라는 신분 때문에 이뤄지지 못하는 비련의 사랑 이야기를 주로 사
영화의 여성상
산업화와 남성중심주의의 그늘에 가리워진 시대였다. 여자 주인공들은 대체로 여공이나 매춘부나 호스티스였다. 박호태의 이와 같은 호스티스영화들은 산업사회의 대세에 떠밀려 도시로 밀려든 여성들의 삶이란 소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호스티스라는 신분 때문에 이뤄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