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문(文)으로 가문을 빛내는 인물들을 조사하는 것도 좋겠거니와, 나의 조상들이 누가 있나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과연 공부로, 과거시험으로 이름을 떨친 분들이 아닌 역사의 한 흐름에서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 있나 보던 중, 홍경래(洪景來)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홍경래를 모르는
Ⅰ.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배경
홍경래의 난은 1811년 12월 18일 (순조 재위 11년)에 일어난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비교적 큰 규모의 농민항쟁이었다. 이때 재위하고 있던 국왕의 묘호가 순조가 된 것은 홍경래의 난 진압의 성공에 기인한다. 그만큼 대규모 봉기로 조선왕조에 커다란 충격
Ⅰ.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배경
홍경래의 난은 1811년 12월 18일 (순조 재위 11년)에 일어난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비교적 큰 규모의 농민항쟁이었다. 이때 재위하고 있던 국왕의 묘호가 순조가 된 것은 홍경래의 난 진압의 성공에 기인한다. 그만큼 대규모 봉기로 조선왕조에 커다란 충격
홍경래 등은 거사일을 이틀 앞당겨 12월 18일에 봉기하게 되었다. 봉기군은 가산, 박천, 안주의 방향과 정주, 곽산, 선천, 철산을 거쳐 의주로 가는 북쪽 방향의 두 갈래로 나누어 공략하기로 하였다. 남진군의 지휘는 홍경래와 그 밑의 선봉장 홍총각, 모사 우군칙, 후군장 윤후검이 주도하였고 북진군의
미륵신앙과 정감록사상이 번져 나간다.
II. 본론
1. 개항 이전의 민중운동
1) 홍경래의 난
(1) 홍경래홍경래는 18세기 말 평안도 출신으로 체구는 작았지만 영특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외삼촌에게서 유학을 배웠다. 신분은 몰락양반으로 알려져 왔으나 근래에는 평민이라는 주장도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