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서술할 때까지 남아 있었으나 이후 소실된 것으로 생각되어왔다. 1989년 2월에 남당 박창화가 일본 천황가의 보물창고인 쇼소인에서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화랑세기》 한문 필사본(초록본)이 김해에서 발견되었다. 1995년에는 162쪽 분량의 또 다른 필사본(모본‧
화랑세기」가 1989년 박창화의 「화랑세기필사본」으로 세상에 드러남과 동시에 사학자들 사이에 진위논란이 일 정도의 많은 논쟁거리를 던져주었다. 이 책에는 신라시대의 문란한 성생활과 개방적 성문화가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재작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고현정
화랑세기』,『악본』,『한산기』가 아직 남아있다.”라고 기록했다.
발췌본과 필사본이 남아 전하는데 이 책에 대한 위작(僞作) 논쟁이 매우 뜨겁다. 이 책의 발췌본과 필사본은 박창화(朴昌和)씨가 남겼다고 전해지는데 박창화씨는 일제시대 일본 궁내성 도서료에 근무하면서 화랑세기 원본을 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화랑세기』가 위작이라는 주장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김대문의 『화랑세기』가 전해져 오던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김대문이 쓴 것처럼 만든 가짜 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필사본의 진위를 둘러 싼 논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화랑세기』가 사회의 이슈가 되어서 고대사학계가 다시한번 크게 진통을 겪기도 하였다.
이번 발표에서는 1980년과 1989년 세간에 등장한 『규원사화』,『환단고기』,『화랑세기』를 살펴볼 것이다. 그 중 學界에서 이미 僞書로 판명된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를 살피고 , 아직까지도 학계를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