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昭君의 유적을 찾아서
흉노가 초원지역을 통일한 이후, 중원 왕조는 유목민족의 침략에 시달려왔다. 한 무제처럼 정벌을 행하기도 했으나, 돈이나 물자로 달래는 것이 더 나아 통상적으로 화친정책을 취해왔다. 그러한 시대의 희생자 가운데 하나가 화번공주(和蕃公主)들이었다. 이들은 화친정책
화번공주와 혼수품인 자장비를 흉노의 왕인 선우에게 바침으로써 번국과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흉노의 입장에서는 중국 황실의 공주를 얻었다는 명분을 세울수 있었으므로 전쟁대신 화친정책을 수용한 것이다.
역사상 화번공주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북방 유목민족 지역으로 끌려간 여인들은
공주라 하고, 송첸 감포에게 보내어 화친을 도모했다 당나라 때 오랑캐와 화친하기 위해 이민족의 군주에게 시집보내는 공주를 `화번공주`라고 했는데, 거의 대부분은 문성공주처럼 `가짜 공주`를 보냈고, 받는 쪽도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 받았다고 한다.
토번은 8세기 후반 티송 데첸(Trisong Detsan, 적송
화번공주인 것이다. 왕소군은 한나라시대의 궁녀로 그때 황제의 궁녀는 수천을 헤아리고 있었는데 궁녀가 너무 많다보니 화공으로부터 그림을 그려 예쁜 궁녀에게 그날 밤 황제가 침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궁녀들은 화공들에게 많은 돈을 주어 자신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술수를 썼지만 왕소군은
却說西蜀來一方士, 入見上皇, 自言姓楊名通幽, 法號鴻都道士, 有李少君術, (李少君系漢武時人。) 能致亡靈來會。
각설서촉래일방사 입현상황 자언성양명통유 법호홍도도사 유이소군술 이소군계한무시인
능치망령래회
각설하고 서촉에서 온 한 방사는 상황을 들어와 뵙고 스스로 성은 양씨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