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 나눈다. 춘추시대는 평왕이 도읍을 옮기던 BC770년부터 진(晉)이 위(魏), 조(趙), 한(韓)으로 분열되어 제후로 봉해진 BC403년까지의 368년간을 말하고, 전국시대란 춘추시대 이후 진(秦)이 천하를 통일한 BC221년까지를 말한다.
여기서 다룰 춘추시대에 들어서면서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점점 약해져
환공과 관중의 부탁대로 군대를 동원하여 제나라 전쟁에 개입했다. 양공은 태자 소를 호위하여 제나라로 돌려보내 국군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했다. 태자 소는 제나라의 중신 고호(苦瓠) 등의 도움과 지지 아래 국면을 수습할 수 있었고, 인심을 얻지 못한 역아는 황급히 타국으로 도망치는 처량한 망
제 15 맹상군 열전
제나라 위왕때 맹상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맹상군은 전국 시대를 대표하는 4공자중의 한 사람으로 조나라의 펴원군, 위나라의 신릉군, 초나라의 춘신군과 더불어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나라의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맹상군은 재상 전영의 많은 아들 중 하나였다.
그가 태어났
환공에게 문왕과 무왕께 올린 제육과 동궁시弓矢, 대로大路(大輅 : 어가)를 주면서 절을 하지 말게 했는데 환공이 이를 허락하려 했지만 관중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이에 내려가 엎드려 절하고 하사품을 받았다.]
, 진 문공(晉文公) 『史記』卷39「晉世家」第9 “文公修政,施惠百姓. 賞從亡者及功臣,
1. 춘추전국시대의 성립
동주시대의 주왕실은 갈수록 쇠약해져, 하남 서부지역만을 통치
주왕 또한 표면적으로만 ‘천자’의 지위를 유지했을 뿐, 실제적으로는 제후들을 통솔할 수 없는 상태
각 제후국은 패자(覇者, 제후중의 우두머리)가 되기위해 주천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