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중 ․ 전경린의 「황진이」는 1차적으로 문학이 한 사회와 그 맥을 같이하며, 작품은 사회를 대하는 작가의 의식을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선택된 것이다.
본 발표조는 현대가 양성평등의 기치를 높이 내건 시대이고, 철학에 있어 몸 담론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 보았다. 이에 여성
남성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이며 기생이었던 황진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작가황진이 연구는 전해지는 이야기를 취합하여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지만 이 또한 한정된 텍스트 내에서 작가황진이를 알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나.
황진이는 자신이 만날 남자를 자신이 선택하였고 남성적 권위에 도전한 여장부로 표현된다. 한 예로, 벽계수는 명사가 아닌 풍류랑이라며 만나주지 않았으며, 이사종의 노래 소리를 듣더니 직접 그에게 6년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스트로서의 황진이를 평가할 때면, 프랑스의 작가인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 시조 작가 중 여성으로써 당찬 삶을 산 인물을 뽑자면 단연 황진이를 거론할 것이다. 진정한 시인으로써 당당히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인물에서부터 시작하여, ‘노류장화’로 까지 그녀에 대한 평은 다양한데, 실상 그것에 관한 연구들은 신빙성이 의심받는 기록들에 의해
황진이는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역사시간에 황진이는 자주 거명되었으며, 국어시간에도 고전시가 중‘시조’를 강의하는 시간에 황진이의 시조는 빠짐없이 제시되었다. 특히 최근에 서구에서 페미니즘이 밀려들어오면서 한국인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역사적 인물 중 여성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