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에 대한 평가 등과 같이 회재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있으나 그의 논변과 아래에서 서술하게 될 그의 깊이 있는 사상을 통해 보이는 그의 조선조 성리학의 전성기를 이끈 선구자적 면모를 감출 수는 없다.
2. 경학사상
(1)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와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
①
구인록 求仁錄》(1550)
《대학장구보유 大學章句補遺》(1549)
《중용구경연의 中庸九經衍義》(1553)
《봉선잡의 奉先雜儀》(1550)
“세상의 근본은 임금에게 있고, 임금의 도는 마음에 있으며, 마음의 방법은 인의에 있다. 그 길은 지극히 가까워서 멀지 않으며, 그 방법은 지극히 간단해서 복잡하
신유학이라고도 불리는 송대의 성리학은 북송5자인 주돈이,장재,소옹,정호,정이를 거쳐 주희에 의해 집대성되었는데, 주희는 이 과정에서 육구연과의 철학적인 의미를 담은 사상논쟁을 하게 되며 주륙 논쟁 혹은 아호사에서 시작된 논쟁이라 하여 아호논쟁이라고 불리게 된다. 1183년 육구연의 제자였
사상의 변화 등의 정치·경제·사회·사상·문화 등의 여러 분야에서의 엄청난 변혁과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문벌 귀족 중심의 사회이자 중세사회였던 고려사회에서 사대부 중심의 사회이자 근세사회였던 조선사회로 발전한 것이다. 여말선초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먼저
(詞章)을 중시하고 <주례(周禮)>를 국가통치이념으로 내세워 새 왕조의 문물제도 정비와 근세문화 창조에 기여했다. 반면 사림파는 향촌사회에 정착하여 경학(經學)을 중시하고 유교적 철학 연구에 매진했는데, 성종 대부터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관학파를 대신하는 조선 왕조의 새로운 주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