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사대부들이 결합한 결과였다. 급진적 성향의 신진사대부들은 관학파(官學派) 또는 훈구파(勳舊派)로 불리며 새로운 왕조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반면 온건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왕조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은 신진사대부들은 재야로 물러나 훗날 사림(士林)의 모태가 되었다.
관학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사림을 대거 등용하였다. 이때의 사림은 천거제의 일종인 현량과를 통하여 대거 등용되었다.
이들은 3사의 언관직을 차지하고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이러한 신진 사류의 조급한 개혁 의지는 오히려 중종과 훈구 세력들의 반발을 불러 ‘기묘사화’가 발생하였고, 조광조
성리학연구에 힘써 김종직(金宗直)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이때는 사화 직후라 사람들은 그가 공부에 독실함을 보고 ꡐ광인(狂人)ꡑ이라거나 혹은 ꡐ화태(禍胎)ꡑ라 하였다. 친구들과도 자주 교류가 끊겼으나 그는 전혀 개의하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한다
이기에 한국 교육의 뿌리 속에 나타났던 교육이상과 교육적 인간상은 한국교육의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조선시대 위대한 성인이자 교육자인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교육 이념과 사상을 바탕으로 현대 교육에 접목시켜 보려 한다. 그런데 이들은 16c의 사람이고 현대는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