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서는 진골 출신의 젊은이를 ‘화랑(花郞)’으로 삼고, 화랑을 좇는 젊인이들을 ‘낭도(郎徒)’라 이르며 계층과 신분을 뛰어넘어 무리를 이루는 제도가 있었으니 이른바 화랑 제도이다. 화랑과 낭도로 이루어진 단체를 흔히 ‘향도(香徒)’라 불렀다. 김유신의 경우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에
郎徒)를 거느린 조직이었다. 하지만, 진흥왕 때 이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자 이를 폐지하고, 남성을 우두머리로 한 화랑(花郞)을 창설하게 되었다.
이들 무리를 화랑(花郞), 혹은 화랑도(花郞徒)라고 하는데, 풍월주(風月主) ․ 화랑(花郞) ․ 낭두(郎頭) ․ 낭도(郎徒) 등으로 구성되며 각각의
郎徒) 교육의 목적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도적 인물로 현명한 재상과 충신, 그리고 훌륭한 장군과 용맹스러움 병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목적은 부족국가 형태의 삼국경쟁체제에서 민족단위의 통일국가체제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였
郎徒僧)으로 국가의 안녕과 관련된 일을 맡았으리라 짐작된다.
- 최치원 : 헌안왕 1년(857년)에 태어나 죽은 해는 알지 못한다. 12세에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 갔다.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해 율수현위(溧水縣尉)를 지내기도 했지만, 자신의 능력에 비해 턱없이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