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南歌)>를 지었고 76세 때에는 노계곡에 유거하면서 <노계가(蘆溪歌)>를 지었다.
이와 같이 노계는 임진왜란 때는 의병으로서 가정을 잊고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치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유학자들이 지향하는 충효와 안빈낙도를 몸소 실천하면서 은거구도적(隱居求道的)인 삶을 살
1.동학[ 東學 ]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민족 종교로 기일원론(氣一元論)과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특징으로 한다. 2대 교주인 최시형이 교단과 교리를 체계화하였다. 1894년 농민전쟁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1905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하였다.
이미지 크게보기상주 동학교
Ⅰ. 들어가며
1. 호락논쟁의 배경
호락논쟁(湖洛論爭)은 18세기 중, 후반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사학(史學)계의 의견을 참고하면 호락논쟁의 맹아(萌芽)가 이미 양란 이후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락논쟁이 기호학파(畿湖學派), 정치적으로는 노론(老論) 내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Ⅰ. 양명학의 의미
중국 명나라 중기에 태어난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이 이룩한 신유가철학(新儒家哲學). 송대에 확립된 정주이학(程朱理學)과는 대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육상산(陸象山)의 철학과 함께 심학(心學)으로도 불린다. 왕양명은 초기에 이학(理學)을 공부하다가 주자(朱子)의 성즉리(
嶺南道로, 慶州․金州의 소관은 嶺東道로, 晋州의 소관은 山南道로 각각 삼았는데 그 후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으나, 그 3道를 합하여 慶尙道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예종 원년(1106)에 慶尙晋州道로, 명종 원년(1171)에 慶尙州道․晋陝州道로 각각 개칭했다가 동왕 16년(1186)에 慶尙州道로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