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이다.
영양 도천리(永陽 道川里 :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군 북안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조는 신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라고 하나 너무 세대가 멀어 제43세손이 되는 진록(晉祿)으로 중조(中祖)를 삼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 이미 13세에 〈대승음
대승음 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절구를 지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2. 의병활동
31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동래․울산․경주지방을 비롯하여 영양군도 잇따라 함락되므로 분연히 붓을 던지고 의병활동에 가담하였다.
38세 때는 좌절도사(左節度使)인 성윤문(成允文)의 막
노계가사의 현실인식」, 『영남어문학 제 7집』, 영남어문학회, 1980
본 발표에서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에 나타난 가사문학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 그와 더불어 그 시기의 대표적 작가인 노계박인로와 그의 가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더 나아가 그의 가사에 나타
가사란?
1. 운문(시가)와 산문(수필)의 중간 형태.시가 문학에서 산문 문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문학 양식.
운문의 형식에 산문의 내용을 실은 형태로 이해되고 있음.
2. 율문으로 된 수필.
3. 율문으로 된 교술문학
조선전기(~임진왜란)
· 양반층이 창작을 주도.
· 문학이 개인의 성정과 사고를
초경도 거의 지났는데 그대 무슨 일로 와 계신가?'
'해마다 이러기가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가난한 집에서 걱정이 많아 왔소이다.'
'공것이거나 값을 치거나 간에 주었으면 좋겠지만
다만 어젯밤에 건넛집 사는 사람이
목이 붉은 수꿩을 구슬 같은 기름에 구어 내고
갓 익은 좋은 술을 취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