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갑오개혁, 다섯째는 1910년 한일합방 후, 여섯째는 미완성이라는 견해이다. 나는 1894년 갑오개혁이라는 견해에 동조하여 지금부터 갑오개혁에 대한 시각, 내용과 성과, 의의를 통해 그 이유를 뒷받침할 것이다. 또한 나머지 다섯 가지의 견해에 대한 비판을 통해 나의 주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갑오개혁은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 중심의 세계가 최종적으로 붕괴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던 광범한 제도 변혁이었다. 재정제도의 변화에 국한하더라도 대동법 이후 그 형식을 유지하고 있던 공납제도가 최종적으로 폐지되었으며, 궁내부가 창설되고 왕실재산의 관리
갑오개혁』,(서울 : 역사비평사), 2003, 15~55면
당시 조선의 문호개방은 단지 수교와 통상의 문제가 아닌 외압에 의한 내부적 사회제도의 변화와 국가체제의 개혁, 종래에는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로의 전락을 내포한 ‘강요된 근대체제로의 전화요구’라고 할 수 있겠다. 조일수호조규는 머지않아
갑오개혁의 정책 수립에 있어서 근간이 되었다.
② 갑오농민군(동학농민군)의 개혁요구
또 하나의 주요 배경 중 하나는 갑오농민군의 개혁요구에 있다. 안으로 사회를 개혁하고(반봉건) 밖으로는 외래 자본주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민족 주체적 개혁운동(반외세)을 일으킨 것은 갑오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