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들은 곳곳에서 밀려나고 곤혹스런 상황이 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항쟁을 계속했다. 흑룡강 연변을 따른 시베리아 벌판은 곳곳이 독립군들의 기지였다. 그리고 다수가 중공군의 팔로군이 되어 항일전을 폈고 장개석 군대와 공동전선을 펴기도 했다. 그리하여 조국을 다
Ⅰ. 서론
3.1운동 후에 만주지역에서는 많은 독립군이 편성되었는데, 그것을 살피기에 앞서 먼저 그곳에서 항일무장독립군이 형성될 수 있는 배경, 즉 조건들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로 국내에서 항일의병항전의 풍부한 경험을 쌓은 노련한 많은 항일의병장과 의병들이 이곳으로 집결하였
Ⅰ.서론
제국주의의 침략의 결과로 나타난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은 비폭력적 방법에 의한 민족주의 운동으로의 교육 운동, 언론 결사운동, 식산 진흥 운동 등과 의병 전쟁, 독립군 항쟁과 같은 무장 독립 투쟁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3ㆍ1운동이 일제의 무단정치에 의해 진압되자, 다른
(1) 한국 독립군의 창립
일제가 만주침략을 자행한 1931년 9월 18일 당시 동북변방군 사령관 장학량의 군대는 일제 관동군보다 숫 적으로 우세하였다. 그러나 장학량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전쟁 회피 소극적 대책에 동의하여 처음에는 무저항 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1932년 만주국을 세우자 만주군
항일독립운동
1. 독립 운동 기지의 건설
ⅰ) 장소 : 만주, 연해주 (※3대 독립 운동 기지 : 삼원보, 한흥동, 신한촌)
ⅱ) 선구 단체 : 신민회
ⅲ) 활동목표 : a. 경제적 토대 마련 b. 민족교육의 실시 c. 독립군 양성
ⅳ) 대한 광복군 정부의 수립 : 이상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수립, 최초의 임시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