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에 이사하여 정산의 대에까지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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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송정산(원불교)의 교정확립기
교화 및 교정확립기는 정산종사가 종법사에 취임 한 1943년부터 열반하게 되는 1962년까지로 볼 수 있다. 정산종사는 대종사 열반(1943) 후 종법사직에 올라 교화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교단을
산의 儒家․仙道․佛敎사상에 대한 知的, 信仰的 기반이 원불교의 사상과 교리형성에 절대적 요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산은 1943년 소태산이 열반한지 5년 후인 1948년에 圓佛敎 敎憲을 제정하여 「불법연구회」를 「圓佛敎」로 개칭 하였다.
Ⅱ. 송정산(원불교)의 생애
정
원불교 송정산 건국론의 집필배경
ㄱ) 「건국론」이 집필된 1945년 10월의 ‘해방공간’은 민족국가 건설과정이면서도 38도선의 획정, 좌우익 정치세력간의 대립 등으로 민족 분단의 위험이 내재한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 집필된 「건국론」은 곧 통일민족국가 수립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송정산 건국론의 발표
건국론은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한 직후의 정국 상황을 관망하던 정산종사가 온 국민이 서로 단결하고 화합하여 광복된 이 나라의 건국이 순조롭기를 염원하면서 이 민족에게 제시한 탁월한 경륜이 담긴 글이다. 건국론은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산주의는, 무산계급이 유산계급을 무력으로 제거하고,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하여 평등한 무산계급의 사회를 실현하려고 한다. 즉, 투쟁의 전쟁만이 건설을 가져온다는 모택동의 사상은 정산 사상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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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원불교 송정산 건국론의 시대배경
1945년 8.15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