興打令, 等類의 歌詞를 여기 雜歌라고 부르고자 하는데, 사실상 이런 것들은 그가 부르는 곡조가 위주고 그 歌詞는 오직 그 곡조에 의거하여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윤제는 문학 갈래로서의 잡가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그가 잡가와 가사를 동일한
興於詩하며 立於禮하며 成於樂이니라’라고 했듯이 악(樂)은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으며 인격완성의 최고의 경지이다. 괜스레 우리 조상님들이 음악을 즐기며 학문하는 선비조차 음악을 중시한 것이 아니다. 음악이 가지는 교육적인 가치, 한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정서적인 감흥은 유희 그 이상의
時調 등 지식층에서 즐기던 노래에 대하여 대중들이 즐겨 부르던 긴 노래의 총칭이다. 그리고 가곡창과 시조창은 그 창법만이 다를 뿐 [時調詩型]으로서의 문학적 형식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잡가의 장르를 규정함에 있어서 그 문학적 형식과 내용의 고찰이 우선적임은 자명하다. 무엇이든 잡
Ⅰ. 시가(시가문학)와 삼국시대시가
삼국시대의 문학에 대해 남북의 문학사가 보이는 공통점은 풍부한 시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남아 있는 자료가 매우 적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점이다. 그런데, 빈약한 자료 속에서도 새로운 노래를 찾아내어서 노래에 맞는 시대를 배정하려는 노력은 남쪽보
조선 후기는 신분제사회가 존재기반을 잃으면서 서민문화가 전면적으로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경제구조의 변동과 새로운 사상의 유입 등은 서민의식의 성장을 가져왔고 서민문화의 전성기를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잡가는 서민문화가 활성화되어 가던 19세기에 신분적으로는 하층민에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