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980년대
적극적 친아랍 정책 추진 시기였던 198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혼란 속에서 한국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를 방문하여 경제 협력 확대를 표방함으로써 한국의 석유 수급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 후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아랍과의
Ⅰ. 개요
1914년 오스만제국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영국과 투쟁할 때 영국은 아랍인들을 이용하기 위하여 사우디의 샤리프 후세인에게 아랍국가의 독립을 약속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맥마흔·후세인 서한(1914˜1916)이다. 1916년 6월5일 후세인은 스스로 아랍세계의 왕이라 자칭하면서 아랍봉기를 일
정책에서 중동은 팽창 정책의 대상이었고 지정학적, 경제적으로 러시아가 반드시 세력권 아래 두어야 할 지역이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에는 차르 체제 대신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정권이 들어섰다. 이 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체제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또 지도 집단의
정책
․이슬람 테러단체의 반미감정 악화
문화적 배경
․미국의 아랍문화 무시하고 자본주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퍼트림 (이슬람 근본주의와 충돌)
․아랍인들의 미국문화에 대한 이해 불충분
■참고자료: '정치-전문가 대담‘, 동아일보, 9/12, ‘국제-위기의 USA', 동아일보, 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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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동정책에 있어서 친이스라엘적 요소를 강하게 띄우게 함으로써 이슬람 세력의 불만의 대상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둘째, 이슬람 세계 내부의 모순적 상황이다. 이슬람권의 대다수 국가들은 비민주적 정권하에서 극심한 부의 편중 상황을 겪고 있다. 이러한 내적 모순은 이슬람 내부에서 회교원
요즈음의 신문 국제면의 기사의 대부분은 중동에서의 사건과 사고로 가득 채워져있다. 9․11테러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까지 중동 문제는 현재 국제정치질서의 흐름을 흔드는 가장 중요한 이슈라 하겠다.
그 중동 문제에서도 핵심은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임은
1부 - 양차대전 이후 아랍세계
절정에 달한 영국와 프랑스의 이해관계
1920년대에 저항 운동이 저지되었고, 중동과 마그립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지배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지 않았으며, 몇 년간은 외부로부터의 도전도 받지 않았다. 나머지 유럽 강국들인 러시아, 독일, 오스
...들어가며
2001년 9월 11일에 테러리스트 열아홉 명이 납치한 여객기 네 대는 각각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과 국방부 등에 충돌했고, 이로 인해 총사망자는 80여개국의 시민 3천여명에 이르렀다. 이 공격은 전 세계에서 일제히 비난의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는데, 팔레스타인 자치당국의 수반인 야세르
정책 전반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미국의 정책변화가 향후 국제정세 및 대한반도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분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테러로 인한 미국의 대 중동 외교정책 변화의 가능성과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Ⅰ. 서론
2001년 발생한 미증유의 9.11 테러 사건은 테러리즘의 전통적 개념을 바꾸고 국가안보와의 관계를 재 인식토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테러리즘이라고 하면 종교나 민족, 국경, 이데올로기 등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 과정에서 갈등의 주체들이 상대에게 가하는 물리적, 심리적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