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右皆垂涕失聲, 莫能仰視。
좌우개수체실성 막능앙시
좌우는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말이 안나와 우러러 보지 못했다.
時乙弗氏已蓄髮??, 因復召僧供佛, 再向佛像前落髮, 始入室服毒, 引被自覆而歿, 年三十一。
시을불씨이출발렴렴 인부소승공불 재향불상전낙발 시입실복독 인피자복이몰 년삼십일
府兵制
1. 序論
後漢末 三國時代의 大亂이 일어나자 지방의 豪族은 自衛手段으로 人民을 모집하여 莊園의 私兵으로 充員하였다. 이렇게되니 國家는 豪族支配下의 人民을 徵發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며 하는 수 없이 流民을 모으거나 良民을 동원하여 常備軍으로 조직하였던 것이다. 이들 常備軍의
우문태는 곧 우문각을 세자로 세웠다.
西魏主廓三年八月, 泰北巡渡河, 還至牽屯山, 忽然遇病, 病且沈重, 急發使馳驛, 往召中山公護。
서위주곽삼년팔월 태북순도하 환지견둔산 홀연우병 병차침중 급발사치역 왕소중산공호
서위 군주 탁발곽 3년 8월 우문태는 북쪽으로 순찰을 가 황하를 건너 견둔산
우문태의 西魏와 北周에서 시작되어 隋ㆍ唐에 이르러 완비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新唐書』, 卷 50 「兵志」에서 보면 중앙에 左右 衛를 두고 그 아래에 12衛를 두어 禁軍이라 하였으며, 지방에는 6백여의 折衝府를 설치하여 兵部의 관할 하에 두었고, 각 절충부에는 절충도위(折衝都尉)가 병사에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