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백두산 정계비와 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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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백두산 정계비와 간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간도(이승예)
1) 명칭의 유래
2) 간도의 범위
3) 간도의 역사

3. 백두산 정계비와 간도(박소현+정소영)
1) 건립배경
2) 건립과정
3) 19세기 말 조 · 청 국경분쟁

4. 간도협약(조성은)
1) 체결 배경
2) 간도협약의 무효성

5.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2) 석돈 · 목책 · 토퇴 공사
토문강이 흐르다가 끊겼다가 다시 흐르는 등 단속이 있었는데, 이러한 곳은 국경으로 확실하게 표시하기 위하여 조선과 청나라는 돌이 있는 곳에는 돌무더기를 쌓고, 돌이 없는 곳은 나무를 잘라 목책을 쌓았고, 돌도 나무도 없는 곳에는 흙무더기를 쌓기로 합의하였다. 이 공사는 조선 측에서 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공사 중에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의 한 상류임이 확인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홍치중의 보고문에 의하여 조선 정부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고문은 다음과 같다.
"목극등은 물이 나기 시작하는 곳과 제1파 제2파의 합류하는 곳만을 보고 더 내려가서 조사하지 않았다. 고로 조사한 개천 물은 다른 곳으로 흘렀고, 중간에 다른 소위 제1파가 있고 그 파에 흘러 합쳐진 것은 모르고 그대로 두만강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오인했다. 이것은 경솔한 짓이었다. 강줄기가 북류하는 줄 알면서 단지 청 칙사가 정한 바대로 입비처에서 내려와 나무가 없고 돌이 있으면 돌로 무더기를 쌓고 돌이 없으면 나무를 잘라 목책을 쌓았다. 공사는 천천히 해도 되기에 조정의 지시를 기다렸다가 재개하자고 합의하였다. 양국의 정계는 중대사이므로 정부의 지시를 따라야하니 지시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노계현, 『間島 嶺有權 紛爭史』, 한국연구원, 2006, pp. 70-71.


즉, 이 보고문은 목극등이 정한 강인 토문강은 두만강으로 들어가지 않고 복류하여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감이 공사 중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 보고를 받은 숙종은 즉시 중신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였다. 영의정 이유연은 "청국대표 목극등이 정한 강줄기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공사현장 감독자들은 감사나 평사에게 보고도 아니하고 그대로 공사를 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감독자들을 불러 문책하고 감사도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하였다. 목극등과 회담도 하고 그의 강경한 성격도 잘 아는 형조판서 박권은 "목극등이 정한 물줄기가 복류했다 하더라도 이미 목극등 스스로 정한 바이므로 이를 국경으로 해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여러 논의를 거듭한 끝에 목극등이 정한 그대로 함이 좋다는 결론을 내고, 조선과 청의 국경은 두만강으로 연결된 강이 아닌, 비문과 일치하는 토문강으로 하였다.

이와 같이 청 칙사 목극등은 송화강으로 들어가는 토문강 상류에 정계비를 세우고 조선 측의 재심요구를 완강히 거절하면서 자기가 조사하고 결정한 일이 틀림없다고 강조했고, 조선은 정계비에서 목극등이 지정한 수류발원처에 이르기까지 석돈 · 목책 · 토퇴를 쌓아 경계 표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경 설정이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되나, 결국 비문에 적혀진 대로 영토를 정하게 된다. 이것으로 백두산 정계비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노계현, 『間島 嶺有權 紛爭史』, 한국연구원, 2006, p. 72.


참고문헌
❋ 참고문헌 ❋

 단행본

· 강석화, 『백두산 정계비와 간도』, 한국사연구회, 1996.
· 김득황, 『잊혀진 고토 만주의 역사』, 삶과 꿈, 2003.
· 노계현, 『間島 嶺有權 紛爭史』, 한국연구원, 2006.
· 시노다 지사쿠, (누가 번역), 『간도는 조선땅이다. 백두산 정계비와 국경』, 지선당.
· 이성환, 『간도는 누구의 땅인가?』, 살림지식총서,
· 이희근, 『한국사는 뜨겁다』, 거름, 2006.
· _________『웅진학습백과사전 3권 - 한국사』, 웅진출판.
· 이한기, 『한국의 영토』, 1969
· 진단학회, 『한국사』, 을유문화사, 1963.



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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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찬규, 「간도의 영유권」, 『한국북방학회논집』 1, 한국북방학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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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간도협약의 역사적 쟁점과 일본의 책임」, 『중국사연구』, 중국사학회, 2009.
· 배성준, 「한 중의 간도문제 인식과 갈등구조」, 『동양학』 43,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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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환, 「간도 영유권 문제 해결을 위한 시론적 연구」, 『동북아 문화연구』 14,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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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지역문화전공 석사학위논문.
강석화 , 「백두산 정계비와 간도」, 한국사연구회, 『한국사연구』 96 , 1996.
· 김정호, 「국제법상 청일 간도협약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논총』16, 2000.

 인터넷 자료
· 홈페이지 간도 땅 찾기 운동본부- 간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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