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화] 중세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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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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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1장 라틴 기독교 세계와 주변 세계
1. 라틴 기독교 세계의 분할
2. 라틴 기독교 세계와 외부 세계의 관계

2장 사회의 연결 고리들
1. 정부의 발달
2. 신분과 생활 형편

3장 질서를 세워간 기독교 사회
1. 교회와 세상
2. 로마와 교황청
3. 수도원들

4장 사상의 전승
1. 학문의 대요
2. 학문과 일상생활의 문제들

5장 서사시에서 로맨스로
본문내용
서론
10세기 말부터 13세기 초까지 서유럽이 형성되어간 과정이 이 책의 주제이다. 이 시기를 다루려 할 때 가장 편리한 기준으로 잡을 수 있는 연대는 972년과 1204년이다. 972년에 게르베르투스가 랭스로 갔다. 그가 랭스에서 집필한 저서들, 그가 고안한 교수법,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다음 두 세대 동안 유럽 북부의 학문 발전에, 특히 논리학 연구의 폭을 넓히고, 중세의 지적 성취의 토대가 된 그리스 사상의 재정복을 진척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1204년은 매우 복잡한 사건들을 통해서 서방의 정치사상의 경향과 한계를 보여주며, 서방 세계가 지중해 상권을 장악한 현실을 극적으로 조명해 준다. 지중해 상권 장악이란 위업은 육지로 둘러싸였던 10세기의 유럽으로서는 요원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지중해가 유럽의 정치 무대로 복귀한 일과 오랫동안 쇠퇴의 길을 걷다가 이제 유럽의 무게 중심으로서 위상을 부분적으로 되찾은 일은 중세 후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요인이다.

1장 라틴 기독교 세계와 주변 세계
1. 라틴 기독교 세계의 분할
다양한 자국어의 형태로 라틴어를 사용한 사람들과, 안정되게 정착해 있던 게르만어권 사람들을 구분한 선은 수세기에 걸친 전쟁과 정복과 사회적 격변을 겪으면서도 거의 변하지 않은 형태로 남았다. 이 구분선의 서쪽과 남쪽에서는 11세기 말까지 웨일스, 스코틀랜드의 산지,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주요 지역에서 로망스어를 사용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쓰인 유사한 언어가 그 지역 사람들을 한데 결속시켜 준 진정한 띠였다.
클뤼니회와 시토회 같은 수도회들과 십자군, 새로운 학파들, 그리고 점증하던 대학교들은 모두 프랑스어권에서 생겼으며, 당대인들은 라틴 세계의 동쪽 절반과 서쪽 절반 사이의 간격이 갈수록 넓어지는 것을 의식하는데 더디지 않았다. 그리고 십자군 원정은 라틴 기독교 세계 두 절반 사이의 간격을 훨씬 더 넓혀 놓았다.
일반적인 예측과는 달리 일반적인 예측으로는 ‘라틴 기독교 세계의 장래가 독일어권 군주들과 백성들의 손에 달려있다’ 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923~973년경의 독일의 변모는 유럽 정세에서 가장 희망적이었으며, 오토 1세는 유럽 최고의 군주였고, 유능한 신하들과 당시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군복무와 부역 전통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구질서의 파괴가 덜 심각했기 때문에 혁신도 덜 필요했다. 11세기와 심지어 12세기의 독일은 유럽에 계속해서 가장 견고한 정치적 구조를 제시했다. 그들은 고수할 것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서서히 상실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소유한 것이 적은 사람들일 수록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장 자유롭게 행보할 수 있는 법이다. (중세의 형성 p24~25)
, 11세기와 12세기에 발생한 혁신적인 활동들은 시선을 독일에서 서쪽으로 돌려 로망스어권 나라들, 그 중에서도 먼저 프랑스와, 노르만족에게 점령된 영국, 그리고 이탈리아를 바라봐야만 알 수 있다. 로망스어권 나라들에서 비슷한 언어가 쓰였다는 사실은 사람들과 사상들의 왕래를 손쉽게 만들기에 충분했을지라도, 로망스어권의 통일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사회 조직과 정치적 구심점과 생활 여건에 다양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가장 뚜렷이 구분된 지역은 북부와 남부였다. 대체로 북쪽으로 멀리 가면 갈수록 고전 로마 시대의 흔적이 희박해진다. (건축,법률,언어적인 측면에서 특히 언어적인(문학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차이를 확연히 보여주는 ‘백작 위프레드의 부음 소식을 알리고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기 위해 유렵 곳곳을 다닌 한 여행기’를 자세히 소개하였다. (중세의 형성 p27~30)
) 그리고 감히 말하자면 중세문화는 로망스어 세계의 북쪽 절반이 내놓은 독특한 산물이다.

2. 라틴 기독교 세계와 외부 세계의 관계
(가) 북쪽과 동쪽의 접경지대 - 9세기와 10세기 유럽 북부와 동부 접경지대에 자리잡은 나라들이 유럽에 준 선물은 사상들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쉽게 수출할 수 있는 상품들이었던 노예는 농작물 생산을 크게 늘려놓았다. 이들중 가장
참고문헌
프리드리히 헤르, 중세의 세계, 현대지성사, 1997
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까치, 2000
호르스트 푸어만, 중세로의 초대, 이마고, 2003
E.Gibbon외, 서양중세사 연구, 탐구당, 1987
브라이언 타이어니, 시드니 페인터, 서양중세사, 집문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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