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만찬(교육) - 역사적, 성경적, 신학적, 실천적 의미에서의 주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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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의 만찬(교육) - 역사적, 성경적, 신학적, 실천적 의미에서의 주의 만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주의 만찬(교육)
[들어가며]
가르치는 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그 내용에 대하여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일차적으로 주의 만찬에 관하여 조사하였다. 아래는 주의 만찬을 다양한 접근을 통해 이해 한 것이며 그 의미에 대하여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발췌한 내용들을 통하여 주의 만찬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기를 바라면서 그 자료들을 제시한다.
또한 가장 아래에는 교육을 위한 주의 만찬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것은 교육방향을 설정하고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를 계획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적, 성경적, 신학적, 실천적 의미에서의 주의 만찬]
1. 역사적 고찰 남병두.『교회예전에 관한 역사적 고찰과 교회회복에 대한 전망』
신약성경에 나타난 주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였다. 십자가를 앞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만찬은 광야를 떠나기 직전에 나누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교병 식사처럼 긴박한 상황 가운데 이루어진 식사였다. 이것은 단순한 식사로 끝나지 않고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의 제자들이 반복해야 할 의식이 되었다. 사도바울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11:26)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주의 만찬은 떡과 잔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려진 피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새언약(New covenant, 고전11:25)을 기념하는 예전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믿는 자들의 구원을 이룬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상징하고 그의 재림을 기대하는 행위이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만찬 의식 자체를 “행동으로 나타난 은유”로 생각하였고 그것이 “단순히 설교의 형태가 아니라 어떤 실체 안에서 그리고 그 실체를 통하여 다른 실체를 파악하는 것으로…이해하였다.
2세기 초에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의 수가 늘어가는 것을 보고 위협을 느끼며 고심을 했던 비두니아의 총독 플리니가 당시의 황제 트라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교인들이 어떻게 예배했는지 그 모습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외부인의 관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세부적이지 않지만 그 편지는 기독교인들이 정해진 날 새벽 이전에 만나서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그들 스스로 죄 짓지 않고 신앙을 지키겠다는 맹세로 다짐한 뒤에 다시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예배 후에 함께 음식을 나눈 것은 필시 주의 만찬과 애찬식이었을 것이다. 초대교회에는 예배와 주의 만찬이 따로 분리된 모임이었다기보다 둘 따를 묶어서 한 예배로 생각하였다.
개신교의 역사에서 교회의 예전이 점점 형식화되었던 것은 교회에서 예전과 예배의 분리가 심화되었다는 사실에서 그 원인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는 중세 가톨릭교회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예배의 중심에서 주의 만찬, 즉 미사를 빼고 강단(말씀선포)을 그 자리에 두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사는 아예 예배의 순서에서 빠지게 되었다. 오늘날 개신교에서 정규 예배에 주의 만찬이 포함되는 경우는 일부 소수교단(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교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주의 만찬이 예배의 일부분 이었을 뿐 아니라 예배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하나 됨의 교제를 이루는 것이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초대교회에서 주의 만찬의 가장 주된 의미는 감사와 성도의 교제에 있었다. 주의 만찬이 종종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로 불리거나 ‘교제’(Communion)라는 말로 불린 것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디다케」는 주의 만찬의 주된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과 복음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과 빵으로 대변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가 됨을 나타낸다는 사실에 두었다. 특히 초대교회가 주의 만찬을 통하여 교인들의 하나 됨을 확인하는 것은 그들이 종종 무덤에서 예배를 드리던 일과도 관련이 있다. 초대교인들은 주의 만찬을 통하여 살아있는 성도들 뿐 아니라 신앙을 지키며 죽은 자들과도 하나 됨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종종 신앙의 영웅들이 묻혀 있는 무덤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의 만찬을 가졌던 것이다.
초대교회 때부터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는 신앙고백을 하고 침례를 받은 자로 제한되어 있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 11장에서 주의 떡과 잔을 합당하지 않게 마시는 일을 경계하였듯이 초대교인들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격에 대하여 엄격하였다. 「디다케」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않듯이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자만이 주의 만찬에서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주의 만찬이 단순히 기념과 상징의 의미를 넘어 사효성을 가지는 것으로 표현된 최초의 문헌은 안디옥의 감독 이었던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서신서이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Epistle of Ignatius to the Ephesians)에서 주의 만찬을 “불사의 약(The medicine of immortality)이요, 죽음을 방지하는 해독제(the antidote to prevent us from dying)”라고 묘사하였다. 2세기 초의 기독교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이그나티우스의 이러한 표현은, 그것이 수사적 표현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교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음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침례와 함께 주의 만찬은 교회가 점차적으로 제도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원래 이상의 의미가 부가되기 시작하였고 4세기의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후 예배와 예전에 있어서 이교도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이러한 상황은 점점 더 심화되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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