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의 백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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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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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 속의 백제문화
1. 서 론 (일본 속의 백제 문화가 지닌 의미)
백제 문화가 일본열도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적어도 이 점에 대해서는 이직까지 일본에 대한 우월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일본 고대 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친 백제 문화란 어떤 것인가?’ 라는 물음에는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답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러한 원인을 찾는다면 한국 문화는 일본의 그것보다 우월하였다는 자부심이 당연시되면서 구체적 논리는 별반매력의 대상에서 비껴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백제 문화의 우수성은 누구나 공감하거나 인지하고 있지만, 그러한 백제문화의 모습을 보여줄 만한 자료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데서도 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확신하는 것만큼 가시적인 물적 자료는 충분하기는 커녕 절대 빈곤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백제 문화의 지류이기는 하지만 일본열도에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있는 백제 계통의 문화를 통해서 이제는 역으로 그 모태가 되는 문화를 복원하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이번 발표를 통해서 백제 문화가 일본열도에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그 과정과 실제로 일본에 끼친 백제 문화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 같다.
2. 백제와 왜의 교섭사, 인간과 문물의 전래
2-1. 농경문화의 전래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는 신석기시대부터 이루어져왔다. 북규슈에서 출토되는 소바다식(曾畑) 빗살무늬토기와 부산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조문(繩文)토기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양자 사이의 관계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에 해당되는 일본열도의 야요이 시대에 이르러 급진전을 보게 되는데, 한반도 문화가 거의 일방적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열도에서는 한반도의 선진문화를 체계적으로 수용할 만한 정치세력이 태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진문화의 세례에는 많든 적든 주민의 이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항해술의 발달도 문물의 전래를 촉진시킨 요인이었는데, 금속제 문물뿐만 아니라 벼농사 같은 농경기술 또한 일본열도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일본열도를 제패한 야마토 정권의 기원에 관해서 많은 견해가 제기되고 있지만, 특히 야마토 정원의 경제적 기반을 무시할 수 없는데, 수도작에 의한 논농사와 그 재배의 확대를 통해 경제적 기반의 확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구석부와 마제석검 등 한반도에서만 볼 수 있는 농기구인데, 이를 통해서 한반도에서 북규슈로 벼농사가 전파된 것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벼농사는 연중 계획적인 노동을 해야만 배울 수 있는 기술일 뿐 아니라 수전의 경영에 필요한 토목기술과 농구를 비롯하여 조리 방법, 농경의례 등이 하나의 문화복합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벼농사는 단순히 문화의 영향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에 익숙한 기술을 지닌 주민의 이동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야요이시대의 취락인 환호취락이 경상남도 울산시 검단리와 부여군 송국리의 환호취락과 비슷하다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요컨대 야요이시대 이래로 한국계 이주민들은 일본열도 내의 기존세력판도에 영향을 미치면서 지역별로 일대 세력을 형성했다고 한다. 일본열도 각지에 남아 있는 한국계 지명을 통해서도 그러한 짐작이 가능할 것 같다.
2-2 백제문화의 첫 번째 물줄기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꾸준히 성장을 거듭한 백제가, 4세기 중반경에 이르러 야마토 정권으로 짐작되는 왜와의 공식적인 교섭을 시도하였는데, 국가 간의 교류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마한 영역의 패자로 등장한 백제의 남방 영역은 금강 이북에 머물러 있었지만, 세력 확대를 위해 가야지역으로의 진출과 왜와의 교역 루트를 확보하는 데 관심을 나타내었다. 이는 백제 문화가 왜로 전파되는 첫 번째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