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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 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443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원수정기 동방속주에서의 군대 주둔과 도시화
반기현 ( Ban Kee-hyun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9권 107~140페이지(총34페이지)
본 논문은 원수정기 로마군과 병참제도가 동부속주(카파도키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유다이아, 아라비아, 이집트 등)에서의 도시화와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한다. 로마군의 병참제도는,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제도적으로는 서부속주와 동부속주에 별다른 차이 없이 적용되었다. 현금과 현물로 거둬지는 세금은 평시 병참제도의 근간을 이루었고, 군과 민간에 공히 공급되었다. 전시와 같은 긴급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징발이 이뤄졌는데, 균일가이긴 해도 국가가 주도하는 구매 방식을 보여주었다. 강제 착취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식량 징발(annona), 수송수단 징발(angareia), 숙박시설 징발(hospitium) 등은 아우구스투스 시기부터 체계화된 병참제도의 일부였으며, 이러한 징발 요구 자체가 민간에 대한 제도적인 착취를 의미한...
TAG 병참, military logistics, 식량 징발, annona, 수송수단 징발, angareia, 숙박시설 징발, hospitium, 주둔지 인근 민간 정착지, vici and canabae, 군대영역과 민간영역, military quarter and civilian quarter, 도시화, urbanisation
예수 운동의 기원에서 보는 세금 징수 청부인들
임진수 ( Im Jin-su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9권 141~174페이지(총34페이지)
이 논문은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에 나오는 세금 징수 청부원들을 예수 운동의 기원에서 고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금 징수 청부원이라는 개념은 신약학 연구 전반에 걸쳐서 오랫동안 히브리어 암하렛츠와 동일시 되어 왔고, 이 개념은 죄인이라는 단어와 같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E.P. Sander는 Jesus and Judaism(1981) 이라는 그의 책을 통해서 이런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는 연구를 통해서 히브리어 암하렛츠는 유대교의 정결법을 잘 지키지 못하는 평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세금 징수 청부원들을 이렇게 암하렛츠와 동일시 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 논문은 세금 징수 청부원들이 팔레스타안에서 활동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을 다루고 그들이 당시 유대교 안에서 배제되는 그룹...
TAG 세금 징수 청부원, tax-farmers, 예수 운동, Jesus movement, 식탁교제, table fellowship, 포함됨, inclusion, 배제됨, exclusion
성경과 그리스 고전에 보이는 폭력의 사회적 기능과 정당성 - 로마제국의 군사조직이 갖는 폭력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최자영 ( Che Jayoung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9권 175~218페이지(총44페이지)
푼트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세계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하는 주장이 제국의 폭력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처럼,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평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성경에 보이는 평화는 폭력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고, 또 신약에서는 ‘신의 평화’를 통해 적의 파멸을 촉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평화’는 기독교의 ‘신의 평화’와 다르다. 신약에 구현된 폭력은 이른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명분으로 한 한계 없는 정복전과 비교해볼 때 그 지향하는 이념은 물론 사회조직의 기반 자체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복전을 추구했으나, 성경의 평화는 힘의 사회적 조직이 아니라 오직‘말씀’과 민간인의 모임 ‘교회’에 의지했던 점이 그러하다. 그런데 사랑과 용서를 지향하는 신약성경에서...
TAG 성경, Bible, 그리스 고전, Greek classics, 폭력, violence, 로마제국, Roman Empire, 군대조직, military organization
안티오키아의 율리아누스 황제 : - <턱수염을 혐오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
배유연 ( Bae Yu-yeon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9권 219~256페이지(총38페이지)
‘배교자’ 율리아누스(Julian the apostate)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래 가속화된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의 흐름을 거슬러 이교 부흥을 꾀한 황제이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기독교의 견제와 이교 지원 뿐 아니라 도시자치의 재건, 관리들의 부패 청산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있다. 이교의 부활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삶의 지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으며 그 또한 이를 인식하고 정책을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본고는 그의 논쟁적인 연설문 <턱수염을 혐오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당대의 정치적 상황 및 4세기 로마의 내적 문제들을 분석할 것이다. 또한 그의 대응이 어떤 인식과 실천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효력은 어떠하였는지 평가하고자 한다. 율리아누스는 이교를 로마의 타락을 바로잡을 정치철학으로 발전시키고 정착시키려 시도했다. 그는 철학자 황제를 지향...
TAG 율리아누스, Julian the Apostate, 이교, paganism, 안티오키아, Antioch, <턱수염을 혐오하는 자들>, Misopogon, 인간애, philanthropia
에보이아에서 이스키아까지 : 이탈리아에 최초로 나타난 그리스 정착민의 정체성 구축
세바스티안뮐러 ( Sebastian Muller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9권 257~300페이지(총44페이지)
이탈리아 나폴리만의 이스키아섬에 있는 피테쿠사이는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중부에 있는 에보이아섬의 그리스인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발견하여 최초로 건설한 도시이다. 본 연구는 에보이아에서 피테쿠사이로 넘어 온 그리스 정착민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그들이 정체성을 구축했는지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부 그리스의 에보이아섬에 있는 레프칸디의 원기 하학적인 묘지 자료와 피테쿠사이에서 가장 오래된 매장지를 비교한 결과, 이탈리아 피테쿠사이로 이주한 최초의 그리스 정착민들이 여전히 새로운 터전에서 그들의 장례의식과 정체성을 보존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 요소를 ‘외국’ 요소로 대체하며 서로 다른 문화 사이 환경에 적응해갔다. 피테쿠사이는 에보이아인에 의해 건립되...
TAG Euboea, Ischia, burial customs, `Greek colonization`, Correspondence analysis
『벤트라시 석비』 - 위작 역사기술 및 신화학적 분석 -
유성환 ( Yoo Sung-hwan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8권 7~52페이지(총46페이지)
『벤트라시 석비』는 테베의 콘수 신관(들)이 창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서이다. 위서란 과거의 사건과 기록의 권위를 바탕으로 해당 텍스트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문학적 시도로 정의내릴 수 있다. 『벤트라시 석비』에는 람세스 2세의 왕비 혹은 딸 등 역사상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한 가공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석비를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후기 왕조 시대의 신관들이 람세스 2세 치세의 역사적 정황이나 사건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과거의 역사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위서를 창작했다는 점은 위서가 창작자의 의도하고자 한 결과를 실현시키는 데 상당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요한 저술 활동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집트의 황금기 중 하나로 여겨졌던 람세스 2세...
TAG 『벤트라시 석비』, “Bentresh Stela”, 위작 역사기술, pseudo-historiography, 위서, pseudoepigraphy, 람세스 2세, Ramesses II, 콘수, 테베의 3주신, Khonsu, Theban Triad, 토트, Thoth, 어린이 신, child deity
엘레우시스 비의의 기원 : 아테네 왕 에렉테우스와 이집트
오흥식 ( Oh Hungshik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8권 53~84페이지(총32페이지)
이 연구논문의 목표는 고대 그리스의 ‘엘레우시스 비의’의 기원이 이집트에 있었음을 문헌적, 고고학적, 어원적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제시하는 데에 있다. 기원전 14세기 전반 아테네 왕 에렉테우스에 의해 그 비의가 이집트로부터 받아들여져 그리스의 엘레우시스에 확립되었을 개연성을 제시하려 한다. 사후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엘레우시스 비의(Eλευσiνια Μυστŋρια)는 고대 그리스에서 데메테르 여신의 숭배를 위한 제례다. 엘레우시스 비의가 기원한 시기를 학자들은 청동기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데에 거의 동의하고 있지만, 기원지에 관해서는 그리스 본토설, 트라키아설, 크레타설이 있다. 그런데 일찍이 『엘레우시스 비의(Les Mysteres d’Eleusis)』 (1914)라는 책으로 엘레우시스 비의에 관한 연구의 문을 열어 놓았던 폴 푸카르(...
TAG 엘레우시스 비의, Eleusinian Mysteries, 에렉테우스, Erechtheus, 이집트, Egypt, 아멘호테프 3세, Amenhotep III, 폴 푸카르, Paul Foucart
퀸틸리아누스의 웅변술 쇠퇴론과 이상적 연설가론
최진호 ( Choi Jin-ho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8권 85~125페이지(총41페이지)
필자는 이 논문에서는 퀸틸리아누스의 웅변술 쇠퇴론과 이상적 연설가 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가 제시했던 이상적인 연설가의 모습이 제정기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실효를 거두지 못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1장에서는 시대배경과 퀸틸리아누스의 생애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어서 2장에서는 퀸틸리아누스와 제정 초기 지식인들의 주요논제였던 ‘웅변술 쇠퇴 담론’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 3장에서는 『연설가 교육론』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연설가의 모습과 그 한계를 논의한다. 웅변술과 수사학은 서양 고대 세계에서 중요한 인간의 활동 중 하나였고, 그리스에서 로마로 유입된 웅변술은 공화정 시기 정치엘리트들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이후,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정치적 변화에 따른 고발자의 활동과 모의연설의 유행, 정치적 자유의 감소는 웅변술의 쇠퇴를 불러왔고,...
TAG 퀸틸리아누스, Quintilian, 『연설가 교육론』, institutio oratorio, 웅변술 쇠퇴, the Decline of Oratory, 수사학, Rhetoric, 선량 시민, vir bonus
안티오키아 사건 이후 베드로와 바오로의 관계에 대하여
정기문 ( Jung Gi-moon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8권 127~153페이지(총27페이지)
초대 기독교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바오로는 49년경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신자와의 공동식사 문제로 결별하였다. 그 후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주는 사료는 전혀 없다. 이 논문은 1세기 후반에서 2세기에 두 사람의 후계자들이 작성한 문서들을 분석하여 두 사람의 화해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바울의 후계자들이 생산한 문서들은 적극적으로 베드로의 권위를 높이 거나 베드로와 바울이 동일한 신학을 추구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바울이 생전에 베드로에 대해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바오로는 독자적으로 교회를 수립한 이후에도 베드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유대인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고, 할례당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주의 형제 야고보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했던...
TAG 바울, Paul, 안티오키아, Antioch, 베드로, Peter, 초기 기독교, Early Christianity, 대립, Conflict
『헬라스와 그리스, 그리스성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 읽기 조은정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2016, 419쪽.
김혜진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서양고대사연구 [2017] 제48권 155~160페이지(총6페이지)
초대 기독교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바오로는 49년경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 신자와의 공동식사 문제로 결별하였다. 그 후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주는 사료는 전혀 없다. 이 논문은 1세기 후반에서 2세기에 두 사람의 후계자들이 작성한 문서들을 분석하여 두 사람의 화해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바울의 후계자들이 생산한 문서들은 적극적으로 베드로의 권위를 높이 거나 베드로와 바울이 동일한 신학을 추구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바울이 생전에 베드로에 대해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바오로는 독자적으로 교회를 수립한 이후에도 베드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유대인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고, 할례당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주의 형제 야고보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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