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김희연 ( Kim Hee-yeon )이화사학연구소, 이화사학연구[2019] 제59권 1~43페이지(총43페이지)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박범 ( Park Beom )이화사학연구소, 이화사학연구[2019] 제59권 45~92페이지(총48페이지)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장영숙 ( Jang Young-sook )이화사학연구소, 이화사학연구[2019] 제59권 93~127페이지(총35페이지)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김영미 ( Kim Young-mi )이화사학연구소, 이화사학연구[2019] 제59권 129~158페이지(총30페이지)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김수연 ( Kim Soo-youn )이화사학연구소, 이화사학연구[2019] 제59권 159~194페이지(총36페이지)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김수자 ( Kim Soo-ja )이화사학연구소, 이화사학연구[2019] 제59권 195~224페이지(총30페이지)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
도미엔 ( Do Thanh Thao Mien )이화사학연구소, 이화사학연구[2019] 제59권 225~263페이지(총39페이지)
본 논문은 로마 제정 초기 그녀의 이름을 딴 파당(partes Agrippinae)을 이끈 것으로 알려진 대(大) 아그리피나(Agrippina the Elder;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33년)를 재조명하였다. 아그리피나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라는 점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게르마니쿠스(Germanicus; 생몰년: 기원전 15년~기원후 19년)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아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는 바를 숨길 줄 모르는 단점을 지녔다. 어머니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하면서 황실에 편입되었으며 위선자로 불릴 정도로 속을 감추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재위: 기원후 14~37년)와 아그리피나는 여러 면에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