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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AND 간행물명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827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축구를 통한 독일 통일의 명과 암
오종현 ( Oh Jonghyun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1권 275~298페이지(총24페이지)
독일의 통일은 ‘서독화’로 압축될 수 있다. 동독의 기존 사회 시스템과 문화에 서독의 가치관과 시스템을 덧입힘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해 내고자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동독에 자리 잡고 있던 사회 구성요소가 점차 붕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거시적인 분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여가나 놀이와 같은 작은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축구계 또한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축구는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독일 내에서 가장 큰 협회와 인프라를 지닌 분야이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 축구계의 변화를 통해통합의 전개와 결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유럽 축구계는 80년대 중·후반부터 상업화 조짐을 보였으며 90년대에 이르러서는 거대 시장이자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변화하게 된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자국 내 시청층을 확보했을 뿐만...
TAG 분데스리가, 독일통일, 축구, 독일축구연맹, 독일축구협회, Bundesliga, German reunification, football, DFB, DFV
역사의 관점에서 보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과 햇볕정책: 모델로서 서독의 사회시장경제제도와 동방정책
노명환 ( Meung-hoan Noh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1권 299~347페이지(총49페이지)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해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이 195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사유와 저술활동 그리고 정치 활동을 통해 정립되고 숙성되어 왔음을 설명하였다. 그의 대중경제론은 대중의 참여 속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대중민주주의를 전제로 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정의와 함께 공정한 시장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서독의 사회시장경제제도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이 사회시장경제제도는 각 정부의 동방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자원이 되었다. 이를 모델로 김대중은 대중경제론과 햇볕정책의 관계를 설정했음도 설명했다. 필자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이 세계적인 냉전시대 그리고 남북관계의 텍스트 속에서 읽혀져야 함을 강조했다.
TAG 김대중, 대중경제론, 사회시장경제제도, 햇볕정책, 동방정책, Kim Dae-jung, Theory of Mass Economy, Social Market Economy System, Sunshine Policy, Ostpolitik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제국의 인도 침공 계획에 관한 소고
이정하 ( Lee Jeong-ha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0] 제80권 119~148페이지(총30페이지)
크림 전쟁(Crimean War, 1853~1856) 이후 러시아 제국은 인도에 대한 수많은 군사 침공을 계획하였다. 모든 계획이 결국은 여러 문제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의 인도에 대한 침공 위협과 그로 인한 영국의 공포는 이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으로 불리게 될 두 제국 간 경쟁의 주요 원인이자 내용이 되었다. 침공 작전 그 자체뿐만 아니라 관련 논의를 통해서 러시아제국이 구상하고 있던 전략의 많은 측면이 드러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레이트 게임을 다룬 연구들은 군사적 측면을 피상적으로 다루곤 하였다. 많은 연구들이 크림전쟁 이후 흑해와 발칸 지역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러시아가 다른 돌파구를 찾고자 중앙아시아로 진출하였다고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레이트 게임의 의미를 명확하기 이해하기 위해서...
TAG 중앙아시아, 드미트리 밀류틴, 알렉산드르 바랴틴스키, 인도 침공, 크림전쟁, Central Asia, Dmitrii A, Miliutin, Aleksandr I, Bariatinskii, Invasion to India, Crimean War
1970년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미주본부」의 ‘선 민주·후 통일’ 노선과 자유연합 -김재준의 의장활동을 중심으로-
고지수 ( Koh Jisoo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0] 제80권 33~70페이지(총38페이지)
이 글은 1970년대‘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미주본부(한민통 미주본부)’의 반 유신 운동을 ‘선 민주·후 통일’지도이념에 따른 냉전기 자유연합 노선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1970년대 미주 한인사회는 폐쇄된 국내조건과 달리반 유신 체제 비판과 통일논의가 가능했다. 한민통 미주본부는 1973년 7월 야당 정치인 김대중의 유신체제 비판에 공감한 미주 한인들의 결합으로 결성되었다. 개신교 배경의 명망가들이 모여 느슨한 조직체로 출발한 한민통 미주본부는 1974년 11월 국내 민주인사이자 개신교 자유주의신학자 김재준의 결합으로 제1차 총회를 개최하여 자유진영 연합 노선을 채택하였다. 1976년 제3차 총회 이후 국내에서 선포된 「3·1민주구국선언」을 지도노선으로 채택하여 자유민주주의 정치이념과 ‘선 민주·후 통일’노선을 천명함으로써 초대의장 김대중의 정...
TAG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한민통, 미주본부, 한민통 일본본부, 김재준, 김대중, 임창영, ‘선 민주·후 통일 노선’, 냉전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3·1민주구국선언’, 자유연합, 로광욱, The Korean Congress for Democracy and Unification-North American Branch, Kim Jae-joon, Kim Dae-jung, Lim Changyoung, “the line of first-democracy and post-unification, 선민주·후통일, , Cold War Liberalism, liberal democracy, “3·1 Democratic Declaration”, free-world alliance, Rowe Kwang Wook
김대중의 역사인식과 한국사 이해의 특징
류시현 ( Ryu Sihyun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0] 제80권 71~92페이지(총22페이지)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의 활동과 영향력과 관련해서 외교와 통일을 포함한 정치 영역에서의 연구 성과는 많이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적 활동과 결정의 기반이 되었던 그의 사상에 관한 연구는 적었다. 따라서 김대중의 정치활동에 기반이 되었던 그의 역사 인식이 어떠했는가에 관한 연구가 요구된다. 김대중은 아놀드 토인비와 그의 『역사의 연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류문명사의 ‘도전과 응전’, ‘창조적 소수자’의 역할 등의 개념을 한국 역사 이해에 적용하고자 했으며, 민족사의 적용과정에서 형성된 역사 진행과정에 관해 ‘낙관’적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민중 주체의 개혁을 긍정적으로 이해했다. 세계사와 한민족사의 경험에 기초한 역사 발전에 관한 믿음은 민족주의에 관한 유연한 인식이 가...
TAG 김대중, 민족사, 민족주의, 민주주의,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Arnold Toynbee, A Study of History, Kim Dae-jung, Korean Nationalism, Korean Democracy National history
서세창의 『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 판본에 대한 고찰
강길중 ( Kang Gilljung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0] 제80권 93~118페이지(총26페이지)
1900년 이후 청은 내우외환의 국내외 정세를 극복하기 위해 신정(新政)을 실시하였다. 특히 만주족 발흥지역인 동북지방의 경제사회발전과 안전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서세창을 초대 총독관(1907-1909)으로 임명하여 개혁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는 동북지역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군사와 외교면을 중점으로 삼고 전반적인 개혁정책을 실시하였다. 2 년의 개혁을 걸쳐 동북지방의 정치, 경제, 군사와 대외관계 등 면에 성과를 얻었으며 후일 이 지역 발전의 기반을 세웠다. 그러나 지역 현실상황의 한계성과 서구열강들의 간섭 등 직/간접적인 요인으로 일부 개혁정책들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1911년 서세창은 동북지방을 떠난 이후 그의 개혁정책과 경험을 기록하기 위해 『동삼성정략(東三省政略)』(총 12권)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동북개혁의 배경, ...
TAG 청말, 서세창, 동북지역 개혁, 『동삼성정략』, 판본 고이, the end of Qing Dynasty, Xu Shichang, Reformation policy in Northeast-China, The Political Strategy of Three Eastern Provinces in China, Complication of different editions
조선전기 친족의식과 동성혼(同姓婚)
박진 ( Park Jean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0] 제80권 5~31페이지(총27페이지)
조선건국 후 성리학적 가부장제 사회를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은 부계 동성 친족의 비중을 이성 친족보다 중하게 여기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동성의 친족을 근친으로 여기도록 하는 동성금혼이 추구되었고 이는 곧 동성 친족은 근친이며 이성 친족은 원친이라는 의도적 구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 양측 친족에 대해 동일한 친밀감을 쌓아왔었던 한국 전통적 풍습으로 인해 부계 중심의 인위적 친족 구분은 쉽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7세기까지 조선의 친족의식은 직접 대면을 통해 친밀도를 확인한 경우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같은 조상을 두고 있다 할지라도 이들을 모두 친족으로 이해하는 데는 거부감이 있었다. 결국 동성이라면 본관이 다른 이들까지도 모두 친족으로 여겨 금혼을 법으로 규정했던 중국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전통적 친족의식을 반영하여, 같은 ...
TAG 동성금혼, 양계사회, 동성동본, 이성친족, 본관, Endogamy, Bilateral convention, Marriage prohibition, Same surname and ancestral seats, agnatic relatives
6세기 중국왕조의 정세 변동과 백제의 외교 변화
정동준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0] 제79권 5~31페이지(총27페이지)
이 글에서는 동아시아 국제관계라는 시각에서 6세기 백제와 중국왕조의 외교를 다루면서, 정세 변화와 이에 대한 대응에 주목하였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549년 양에 파견된 백제 사신은 후경의 난과 제위쟁탈전으로 인하여 555년 이후에야 석방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결과 이 사신은 혼란하였던 양의 몰락한 상황을 파악하여 귀국 후 조정에 보고하였고, 백제는 이후 양과 진에 사신 파견을 주저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560년대 이후 진에 대한 사신 파견은 그 주기가 정치·군사적 기대와 반비례하였기 때문에, 주로 경제·문화 교류에 대한 기대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백제가 567년에야 북조에 사신을 파견하게 된 것은 백제 내부의 사정으로 사신파견이 어려웠던 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대외적인 원인으로는 550년대 이전까지는 북조에 대한 외교...
TAG 백제, 위덕왕, , , 북제, 北齊, , , 후경, 侯景의 난, 무도, 舞蹈, Baekje, Liang, Beiqi, Sui, Houjing, 侯景’s rebellion, dance
고려 초기 나주선의 톤수 추정과 검증
김성준 ( Kim Sung-june ) , 김경옥 ( Kim Kyeong-ock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0] 제79권 33~60페이지(총28페이지)
2004년 나주 영산강 유역에서 발굴된 나주선은 이제까지 발굴된 한선 가운데 최대선으로 추정된다. 선행연구에서는 나주선을 전장 32-42m에 이르는 초대형선이나 고려시대 초마선으로 추정했다. 문헌상 고려의 배는 누선, 초마선, 과선, 일본원정선 등 4종으로 대별할 수 있다. 과선은 여진족의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동북방면에서 활용되었던 군선이고, 일본 원정선은 일본을 공략하는 데 이용된 배다. 발굴된 지역을 고려하면 나주선이 과선이나 일본 원정선일 개연성은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연구에서처럼, 나주선을 고려의 조운에 이용된 초마선으로 가정할 경우 왕건의 누선일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배제될 수 밖에 없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만곡부재를 갖춘 고려 발굴선과 기타 한선의 주요 제원간 구성비율을 추출함으로써 나주선의 잔존부재인 만...
TAG 나주선, 만곡종통재, 왕건, 고려선, 초마선, 누선, 한선, Najuson, L-typed stringer, King Taejo, Koryo ship, Chomason, Nuson, Hanson, Korean ship
동학농민혁명기 나주 수성군의 조직과 활동
김봉곤 ( Kim Bonggon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0] 제79권 61~95페이지(총35페이지)
본고는 나주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재조명을 위해 나주수성군의 실체는 어떠하였으며, 수성군의 활동은 나주수성단계와 호남 초토영 단계, 일본군진출기에 걸쳐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를 분석한 글이다. 동학농민혁명기의 나주지역은 관찬사료와 고문서, 개인문집, 일본군 측 사료를 통해 볼 때 동학농민군과의 관계에 있어서 크게 3단계로 전개되었다. 첫째 단계는 나주 수성기이다. 나주목사 민종렬은 처음에는 전라병영(全羅兵營)의 지원을 받았으나, 전라병영의 군사들이 빠져나가자, 전라 우영의 영장 이원우(李源佑)와 아전들의 도움을 받아 수성군을 편성하였다. 나주는 전라우영으로서 군관과 병사를 갖춘 상시적인 군사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수성군을 조직하고 훈련시킬 수 있었다. 또한 나주지역은 1710년(숙종 30)부터 변란에 대비한 이노작대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어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
TAG 동학농민혁명기, 나주, 수성군, 목사 민종렬, 영장 이원우, 전라우영, 이노작대군, 포군, 일본군, the Period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Naju Suseong-Gun, Naju Moksa Min, Won-Woo, the camp leader of Jeolla Wooyeong, eolla Wooyeong, Innojak Daegun, 吏奴作隊軍, artillery men, Japanese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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