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코드 와콘 텐츠 포스트모더니즘과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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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화코드 와콘 텐츠 포스트모더니즘과 웹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번 과제를 위해 어떤 웹툰을 분석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웹툰이라는 것이 자신의 일상을 담은 아무 의미도 없는 내용인 작품이 많은데다가, 스토리가 있다면 몇 백화가 넘어갈 정도로 양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도 완벽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리되지 않은 웹툰의 스토리까지 분석한다는 것이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내가 가장 관심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인 ‘탈중심주의’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선정했다.
네이트 금요일 웹툰인 ‘두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선택해 분석해보겠다.
2.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줄여서 ‘두결한장’이라 부르는 웹툰의 만화가는 박희정이다. 이 점은 이 웹툰을 선정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박희정은 ‘호텔 아프리카’로 유명한 90년대의 대표적인 순정만화가이다. 하지만 시대에 탑승하듯 박희정도 웹툰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 출판 만화 시장은 죽었다. 만화가는 만화 잡지에 연재를 하고, 그 연재분을 모아 출판을 한다. 하지만 지금 연재를 할 수 있는 잡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유명 포탈의 웹툰으로 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만화가들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박희정은 굉장히 아름답고,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그림으로 유명했고, 가벼운 연애물이 아닌 자신만의 색이 담긴 내용의 스토리로 유명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흔하지 않은 동성연애 장르를 꾸준히 그려온 만화가이다. 이런 박희정이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림도 내용도 가벼운 웹툰에 도전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워낙 자신만의 그림이 확고한 작가라 웹툰이라 할지라도 질이 현저히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섬세한 손작업이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거친 느낌이 없지 않아 들었다. 내용을 보자면, 일단 이 작품은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이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6월 21일에 개봉예정인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로 기획되었다. 그런데 웹툰으로 먼저 소개된 것은 아마 마케팅 수단일 것이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뒷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이 영화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이용하는 마케팅 아닐까 싶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 하나는 ‘반심층분석’이다. 웹툰이라는 가벼운 대중문화를 이렇게 심각하게 분석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과 거리가 먼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건 ‘문화대중주의’와 ‘탈중심주의’는 생각을 깊이 하도록 만드는 것같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것이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포탈 네이트의 홍보를 위해 연재되는 ‘두결한장’의 상업성은 ‘문화대중주의’와 연결되고, 낮아진 그림의 질과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빌려온 스토리는 가벼워진 문화인 ‘반 심층주의’와 연결이 된다. 이러한 특징이 웹툰이 정말 포스트모더니즘 대중문화인 것인지, 내가 단지 끼워 맞추는 것인지 혼란스럽지만 지금 당장은 내 스스로 이렇게 믿어진다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으로 들어간다면 ‘탈 중심주의’와 연결이 된다. 이 작품의 주요인물은 4명이다. 게이 두 명과 레즈비언 두 명. 작품은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의사인 한 남자가 같은 병원의 의사인 여자와 결혼하는 장면으로. 하지만 이 결혼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는 게이, 여자는 레즈비언. 둘은 각자의 사정으로 결혼을 단행했다. 남자는 집안의 성화에 못 이겨서, 여자는 입양을 하기위해.
사회 주변부 사람들의 사정이 여러 가지 비춰진다. 동성애, 미혼모, 고아. 사실, 나는 편견이 없는 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편견을 갖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내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고 치면, 꼭 개를 키우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마주칠 때가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남들이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를 기분나빠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호모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그 들의 사랑이고 그들의 권리인데 왜 인정하고 안하고 왈가왈부할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내 자신에게 충격이었는데, 그것은 레즈비언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가끔 실리는 기사 내용이나, 영화 주제, 드라마의 주제는 모두 남성 동성연애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에 대해서 나는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레즈비언을 보는 순간 약간 거북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게이는 나와 같은 성이 아니기에 더 관대하고, 상대적으로 더 많이 접했기에 괜찮았던 것이다. 레즈비언은 게이보다 우리 사회에 더 감춰져있고 드러나지 않는다. 대중문화에서도 그렇다. 아직 드라마나 영화에서 레즈비언 보다는 게이에 관한 것이 더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레즈비언에 대해 건들였다. 그것은 충격적이고 작품의 흥행에 도움이 별로 안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독자들을 만들고, 그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일단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했지만, 그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는 않다. 일단 그들은 따로 산다. 하지만 시부모가 갑자기 집에 들이닥치는 일이 생긴다. 그런 식으로 아슬아슬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여성억압에 대해서도 생각이 들었다. 내가 20대 여성이기 때문에 민감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결혼 생활을 그린 픽션을 보면 이런 느낌을 받는다. 결혼을 하면 남편의 부모의 존재가 더 커지는 것 같다는 기분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여자의 부모의 존재는 사라진다. 현실 세계보다 그 경향이 큰데, 이런 여성 억압적인 문화가 여성의 의식 안에 자리잡고 그 피해의식이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자는 부모의 기대 때문에 결혼을 했지만, 여자는 입양을 하기 위해 결혼을 했다. 여자는 레지던트 시절 처음 받았던 아기에게 큰 애정을 품는다. 하지만 그 아기는 미혼모의 아기였고, 미혼모는 아기를 낳자마자 버렸다. 그 아기를 입양하기 위해 여자는 결혼을 단행했던 것이다. 내용과는 다른 생각이지만, 미혼모는 평소 많이 생각해온 주제이다. 인터넷을 하다 미혼모에 대한 기사를 읽다보면 댓글이 정말 잔인하다. 미혼모라는 단어는 있지만 미혼부라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엄마 자격도 없다느니 온갖 욕설이 달린다.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낙태금지국가이다. 미혼의 남녀가 아이를 가졌는데, 남자가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여자가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을 수 밖에 없는데, 한 생명을 버리지 않고 책임진 여자를 미혼모라는 단어로 가둬놓는 것이다. 이런 연민 때문에 나는 작품에서 아이를 보육원에 맡긴 여자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의 생모를 비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단 레즈비언 여성의 입양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웹툰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대중문화의 순기능을 믿는 편이다. 웹툰이라는 흔하게 언제 어디서나 공유되는 매체가 사람들의 사고를 긍정적으로 하게 만들 수 있다면 생겼다가 없어지는 유행이 아닌 확고한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3. 페이퍼를 쓰다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라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쏟아낸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공부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이기 보다 주관적으로 작품을 본 것 같다. 특히 여성의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페미니즘과 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이럴 때면, 단 한 번이라도 남성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남성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이란 어떤 것인지 나는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내 세대의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막연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남성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군대라는 제도 때문에 자신들이 더 사회적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알 수가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