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코의 역사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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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코의 역사 이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비코는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끌려 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는 섭리의 관념을 하나의 초월적인 힘으로 중성화시켰다. 왜냐하면 그는 역사 과정을 섭리인 동시에 또 자연적인 과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신과학을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합리적인 신학이라고 부르고 섭리는 자연적 빛 혹은 상식으로서 작용한다고 믿었다.
종말론에 관한 관념, 역사의 끝과 완성에 관한 관념은 비코의 경우에, 역사적 발전에 관한 이해로 인해서 제거되었다. 왜냐하면 그에 의하면 역사의 과정은 ‘진행’과 ‘역행’의 리듬으로 흐르는 주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비코에 의하면, 역사의 주기적인 과정은 그 주기적인 원이 차례차례로 나선적인 전진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저 낡은 회기적은 관념과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만일 역사에 구원이 있다면 낡은 주기가 후폐한 다음에 새 주기가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구원은 역사 안에만 있다는 것이다.
19세기의 역사학은 모든 사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관심을 점점 더 집중할수록 거기에는 개개인의 역사가가 그것을 의식했거나 않았거나 간에 상대주의가 발전했다. 이것이 소위 역사주의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인 바, 여기에서는 역사가 근본적으로 자연의 유비(類比)에 따라서 이해되었다. 비코가 그의 ‘새 과학’의 대상은 인간의 공통한 성질이라고 규정지은 바와 같이 말하자면 인류의 자연사이다. 여기에 말하는 자연은 모든 것 속에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초월적인 힘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항상 성장하는 곧 그의 말대로 ‘생기는 자연’이다. 비코는 자연 개념을 역사화 했다고 말할 수 있는 동시에 또 우리는 그가 역사 개념을 자연화 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비코의 저서는 오랫동안, 사실 상 금일에 이르기까지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역사관은 헤르데르의 ‘인류 역사철학의 고찰’에서 그와 평행된 사상을 보게 된다.
서구의 역사 이해의 역사에 있어서 볼테르와 보쉬에 사이의 큰 위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탈리아의 사상가 지암바티스타 비코이다. 그의 저서인 은 역사적 인간성의 깊이를 일생 동안 탐구한 결실이다. 「새로운 과학」이란 신성한 섭리의 합리적은 시민 신학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시민적인 문제들을 포함하는 사회사 속에서 신성한 섭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총괄적으로 볼 때, 「새로운 과학」은 모든 측면에 있어서 시민 세계, 즉 역사적인 인간 세계를 다룬 합리적 신학이다. 여기에서 비코는 초지일관 원시적이고 영웅적이며 종교적인 심성을 강조하고 있다.
법률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으로 옮겼던 비코는 다음과 같은 원리, 즉 진정한 지식은 원인에 의한 지식이며 따라서 우리 인간은 오직 우리가 원인이 되는 것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원리에 입각하여 데카르트적인 「진리」의 기준 자체를 의문시한다. 그래서 “참인 것”은 “창조된 것” 과 동일하다. 비코의 과학의 주요 관심사인 ‘국가들의 공통성’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비코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이를 역전시킨다. 즉 그는 ‘광대무변한 회의의 바다’에는 우리가 확고하게 발을 디딜 수 있는 ‘단 하나의 작은 땅 덩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인간은 역사를 인식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가장 모호한 역사의 단초들까지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고대를 포함한 가장 초기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영원한 진리의 빛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원리들은 ‘인간 정신 자체의 갖가지 변양들 내에서’발견될 수 있고 또 발견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리들은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구성적인 해석의 노력을 통해 힘들게 찾아질 수 있다. 비코는 자신이 근대 주지주의의 온갖 편견들을 타파하고 고대의 법률과 풍습, 언어 그리고 종교 등에 들어 있는 호머적인 인간성과 호머 이전의 인간성이 지닌 전 문명적 멘탈리티를 다시 파악해 내기 위해서는 25년 동안 열심히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참으로 우리가 이 과학에 대해 성찰을 해보았다면 누구나 이와 같은 이상적이고 영원한 역사의 존재를 믿게 괸다고 주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상적이고 영원한 역사가 ‘과거에도 있어야 했고 현재에도 있어야 하며 미래에도 있어야 할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제기된 제 1의 확고부동한 원리는, 국가들의 세계는 틀림없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그 세계의 모습은 인간 정신 자체의 갖가지 변양들 내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원리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역사를 창조한 인간이 서술할 때 가장 확실할 수 있다.
비코는 역사에 관한 지식의 차원에서 데카르트적인 기하학적 확실성의 시상을 재확립하려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경험의 ‘개연적인 진리’를 얻기 위해 과학적인 진리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비코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정신현상학”의 맨 첫 부분에 나오는 헤겔의 ‘확실성의 진리’를 현상케 하는 ‘진리와 확실성의 변증법’을 통하여 이론적인 진리와 감각적인 실제적 개연성간의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비코에 따르면 어떠한 시민 세계도 무신론에 입각해서는 세워질 수 없다. 모든 문명과 법률 그리고 제도, 특히 결혼이나 장례 및 농업과 같은 가장 미개한 제도들조차도 어떤 형태로든 종교적인 - 그것이 참된 종교이건 그릇된 종교이건 간에,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이건 이교도이건 간에 - 희생과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는, 아버지들이 현인의 역할을 떠맡고 사제들은 이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국왕은 이들 가족에게 신성한 법률을 부과해 주는 가족 상태로 어느 정도 성스러운 의식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든 신들이 지닌 공통적인 주요 속성은 섭리이다. 비코의 어원론에 따르면 “신성”은 “점(divination)”에서 온 것이다. 점이란 신적인 힘이 인간에게 내려 준 것은 예견하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섭리는 인류를 멸망시킬는지도 모르는 인간의 타고난 사악함을 시민적인 행복으로 전환시킨다. “왜냐하면 어떠한 일도 그것의 자연적 질서를 벗어나서는 제대로 안정될 수도 없고 또 지속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소위 “자연”법이란 애초부터 시민신학에 근거를 둔 시민법이다. 그러나 비코가 생각한 섭리는 그것이 지는 초자연적 기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발전 자체의 사회적 법칙들과 얼마든지 양립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쉬운’ 방식으로 작용한다. 비코의 섭리 개념은 자연적이고 세속적이며 역사적이라고 하는 근대적 비판은 얼마든지 정당화된다. 왜냐하면 섭리에 대한 비코의 증명에는 아우수스티누스로부터 보쉬에에 이르는 섭리에 대한 신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초월적이고 기적적인 기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비코에게 있어서 섭리는 궁극적인 준거들로 축소되었으며, 그 준거들의 내용과 실체는 곧 역사적 과정 자체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질서에 다름 아니다. 비코의 신은 전능하기 때문에 특별한 간섭을 하지 않고 참아 낼 수 있다. 신은 자신의 자연적 수단인 우연성이나 필연성 그리고 유용성을 사용하여 자연적인 역사 과정 속에서 완전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사에 내재해 있는 현사실적인 역사적 섭리의 자연적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역사란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할 만한 계획을 감고 있는 열려진 책이다. 전형적인 역사의 유형을 그 장소와 시간 그리고 다양성에 비추어 숙고할 경우, 사람들은 “신적인 즐거움”과 만족, 즉 신이 의지하고 준비한 필연성에 대한 만족을 경험하게 된다.
역사의 변증법
비코의 인식론이 『새로운 과학』의 정초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문자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연적 진리와 역사적 진리의 치환 가능성은 순전히 이론적으로 추론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완전히 비비코적인 결론, 즉 인간은 자신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그 결과 자신이 과거에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게 될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인식 할 수 있는 역사의 신이라는 주장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크로체는 비코를 이런 의미에서 해석했고, 그 결과 비코의 “핵심 사상”에서 대부분의 섭리 사상을 제거했다. 크로체의 해석에 따르면 인간사에 관한 인간의 지식이야말로 신적인 지식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역사적 세계를 창조하고, 또한 이 세계를 사유함으로써 자신의 창조물을 재창조하여 그것을 완전히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로체는 “자연적 진리”와 “역사적 진리”의 일치를 섭리에 대한 비코의 믿음을 기반으로 해서가 아니라 주관과 객관, 특수와 보편간의 헤겔적 변증법의 기반에서 이해한다.
비코는 역사의 과정을 훨씬 더 적절하게, 다시 말하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으면서도 자유로운 선택이나 행위에 비해서는 운명에 더욱 가깝다고 해야 할 무언가에 의해서 어디에서나 지배되고 있는 세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자유로운 행위나 결단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건이며 생기이다. 따라서 역사는 일의적인 것이 아니라 다의적인 것이다. 비코는 자신의 비유인 그림을 설명하면서 자연과 역사를 구별할 때부터 이미 이 점을 분명히 하였다. 형이상학은 인간들의 시민 세계를 “산 속에서” 다시 말하면 섭리에 비추어서 성찰한다. 그래서 숭배와 희생제를 위한 제단에 중앙에 위치해 잇는 까닭은 “신이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통해 인간을 탄생시켰고 계속해서 보존해 주기 때문이다.”
특수한 의도와 보편적 목적 인간의 행위와 그 결과간의 변증법은-크로체가 지적한 것처럼-오류로 이루어진 인간적인 희극이 아니라 진리로 이루어진 신적인 희극이며 이는 헤겔의 역사철학에서의 섭리의 작용, 즉 “이성의 간지”와 비견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 칼 뢰비트 저 이한우 역 『역사의 의미』문예출판사 1987
- 루돌프 볼트만 저 『역사와 종말론』대한기독교서회 1968
- 리오넬 루비노프 저 박동환 역 「비코와 역사적 해석의 검증」『현상과인식 통권2호』
한국인민문사회과학회 1977
- 엠파스 인터넷 검색(R.G. 콜링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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