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과신 소재공학

 1  세종대왕 과신 소재공학-1
 2  세종대왕 과신 소재공학-2
 3  세종대왕 과신 소재공학-3
 4  세종대왕 과신 소재공학-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세종대왕 과신 소재공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리과는 신소재 공학과로 세종대왕의 업적과 관련하여 어떠한 점이 있을까 많이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자연에 널린 물건을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사용에 편리하게 다시 만들어서 사용한다. 이처럼 목적에 맞게 만드는 것을 가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가공의 재료가 되는 것을 소재라고 한다. 따라서 소재에는 아주 많은 종류가 있다. 신소재 공학과는 좋은 재료를 개발하고 현재 있는 재료를 더욱 개선해 나가는데 그 교육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당시 지금처럼 많은 재료가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과도 역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더욱 윤택한 삶을 제공 하는데 그 의미가 있기에 세종대왕의 발명품에 관하여 조사하는 것이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 이라고 생각 한다. 세종은 나라가 바르게 서려면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믿고, 농업의 발달과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 고심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의 변화를 미리 알아내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절기와 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알맞은 시기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가뭄과 폭우 등 자연재해에도 적절히 대비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 발명된 것이 석축간의대, 혼천의,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가 있다.
▶ 석축간의대 : 경복궁의 경회루 북쪽에 설치되었으며 높이 6.3미터, 길이 9.1미터, 넓이 6.6제곱미터 규모의 천문 관측대였다. 이 간의대에는 혼천의, 혼상 그리고 규표와 방위지정표인 정방안 등이 설치되었다. 이 간의대와 주변 시설물들은 중국과 이슬람 양식에다 조선의 전통 양식을 혼합한 것이었는데, 1438년(세종20년) 3월부터 이 간의대에서 서운관 관원들이 매일 밤 천문을 관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혼천의 : 천체 관측 기계로, 문헌에는 1432년 6월에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두 달 뒤에 또 하나가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장영실을 중심으로 한 기술 제작진이 정초 등의 고서 연구를 바탕으로 고안한 것이다. 이 혼천의는 천구의와 함께 물레바퀴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시계장치와 연결된 것으로서 일종의 천문시계 기능을 하고 있었다.
혼천의
▶ 해시계 : 해시계를 일구라고 한 것은 이것이 모두 해 그림자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일구들은 모양과 기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인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에 설치됐던 앙부일구는 그 모양이 솔을 받쳐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현주일구와 천평일구는 규모가 작은 일종의 휴대용 시계였고 정남일구는 시계바늘 끝이 항상 남쪽을 가리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영실 등이 만든 앙부일구는 단순히 해시계를 발명했다는 측면 외에 더 중요한 과학적 사실들이 내포되어 있다. 다른 나라의 해시계가 단순히 시간만을 알 수 있게 해준 데 반해 앙부일구는 바늘의 그림자 끝만 따라가면 시간 과 절기를 동시에 알게 해주는 다기능 시계였다. 또한 앙부일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구로 된 해시계였다. 앙부일구가 반구로 된 점에 착안해서 그 제작 과정을 연구해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당시 사람들 이 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해시계
▶ 물시계 : 물시계로는 자격루와 옥루가 있었다.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게 하는 자동시보장치가 달린 이 물시계는 일종의 자 명종이다. 1434년 세종의 명을 받아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고안한 자격루는 시, 경, 점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종, 북, 징을 쳐서 시간을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1437년에는 장영실이 독자적으로 천상시계인 옥루를 발명 해 경복궁 천추전 서쪽에 흠경각을 지어 설치했다. 옥루는 중국 송, 원 시대의 모든 자동시계와, 중국에 전해진 아라비아 물시계에 관한 문헌들을 철저히 연구한 끝에 고안한 독창적인 것으로서 당시의 중국이나 아라비아의 것보다도 더 뛰어났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물시계
▶ 측우기 : 측우기는 1441년에 발명되어 조선시대의 관상감과 각 도의 감영 등에서 강우량 측정용으로 쓰인 관측 장비로, 현대적인 강우량 계측기에 해당된다. 이는 갈릴레오의 온도계 발명이나, 토리첼리의 수은기압계 발명보다 20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기상 관측 장비였다. 측우기의 발명으로 조선은 새로운 강우량 측정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고, 이를 농업에 응용하게 되어 농업 기상학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룩하였다. 이 측우기의 발명으로 정확한 강우량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홍수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측우기
세종이 혼자서 이 모든 발명품을 발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의 곁에서 이 모든 것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 중의 한명이 장영실이다. 그는 조선의 과학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국가 경영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1등 공신이었다. 우리는 세종과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장영실과 같은 인물을 목표로 하여 공부하는 것이다. 많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통하여 많은 개발과 개선을 하여 사람들이 더욱 더 나은 삶으로 도와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임금인 세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장영실 같은 인물이 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할 듯하다.

출처:http://ki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