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국가경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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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의 국가경영6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과거 기업에 있어서 기업구조는 수직적이었으나 오늘날에 들어 수평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좀 더 많은 의견들을 수렴하기 위해서이다. 많은 토론 문화를 장려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를 볼 때 세종시대의 토론과 공론을 중시했던 풍토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왕의 독단적인 정치체제와 중앙집권체제인 조선을 보았을 때 이것은 상당히 앞서나가는 정치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종이 모든 말을 수용했던 것은 아니다. 그 예는 바로 육기를 둘러싼 세종과 고약해의 논쟁으로 볼 수 있다. 논쟁끝에 세종은 고약해에게 처벌을 내렸다.
[세종 22/3/18 고약해의 처벌 지시
나라안의 수령이 3백여 명인데, 비록 서울 안에 있다 하여도 어찌 다 조계와 상참에 참예하는 자이겠는가, 수령의 범장하는 자가 또 어찌 다 3년에 범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육기에만 범하겠는가. 어찌하여 지난날 3년일 때에도 역시 범장한 자가 있었는가. 육기의 법은 육전에 기재되어 있는데 당시에도 큰 폐해가 생기지 않았다. 약해가 한 몸의 사사로 굳이 분경하려고 하니, 이것이 어찌 사생을 피하지 않는 의리이겠는가, 또 일을 아뢸 때 언사가 무례하였으니 추국하여 아뢰라]
는 등 강경한 입장을 세종은 취하고 있다.
이렇게 독단의 세종과 대신의 말을 듣는 세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한 기업을 이끌어가는 태도와도 흡사하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들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가끔 자신의 이익만을 변호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2.세종대의 인재쓰기
세종은 인재를 고용할 땐 그의 능력만을 보았다. 그사람 배경의 귀천쯤은 무시하고 말이다. 또한 이들의 비판 또한 잘 들을 줄 아는 현명한 왕이었으며, 작은 잘못쯤은 용서하고 넘어갈 줄 아는 너그러운 왕이었다. 세종대의 인재쓰기 이것은 오늘날에도 배워야 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