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사회 모습 (4분설과 양분설, 그리고 양반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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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의 사회 모습: 4분설과 양분설, 그리고 양반의 성격】
1. 여말선초의 사회전환이라는 역사적 변화에서 신분제 개편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친 커다란 진전을 가져왔다. 유불 교체를 비롯하여 신분계층과 향촌구조, 가족제도와 혼상제례 등의 변화가 수반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생의 안정과 권농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의식주 생활이 크게 향상되고 인구와 농지 또한 획기적으로 증가되었다. 새 왕조의 개국과 함께 직면한 신분 재편성의 문제는 지배신분의 이원화와 양인신분의 확대로 해결 방향을 잡고 있다. 조선시대의 사회신분은 학자에 따라 달리 분류될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법제적인 구분(크게 良賤 으로 구분)과 사회 통념상의 구분(士族이란 지배계급이 고려시대부터 피지배층인 일반 양인과는 구분되어 있었고, 그 사족은 조선 초기에는 양반과 동의어로 사용되며, 대체로 15세기에는 양반(사족)상민천인의 세 계층으로, 16세기 이후에는 중인층의 형성으로 양반중인상민천인의 네 계층으로 대별된다) 있다.
조선시대 신분사 연구에 있어 많은 의견이 대립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법적 제도에는 양천의 규정만 보이는 데 비해 실제적으로는 良身分에서 양반중인양인이 별도로 파생되어 나간 적지 않은 사례를 당시의 사료나 사회관습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논란이 되는 조선시대의 신분 구분 중 4분설과 양분설, 그리고 지배층으로서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며 신분층을 이끌어 갔던 ‘양반’의 성격을 통해 조선시대 사회의 모습을 고찰해 보자.
2. 4분설
4분설은 조선의 사회신분의 실상에 대한 견해로 조선의 사회신분이 良賤(양천)의 큰 구분 위에서 상급신분층으로서 兩斑(양반), 그리고 奇術官(기술관)庶孼(서얼)胥吏(서리)軍校(군교) 등의 중간계층으로 中人, 일반 농민층으로 良人, 賤民의 주류인 奴婢 등으로 구분되는 신분계층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학설이다. 4분설에서는 양반이 최고의 지배신분층으로서 고려 말에 형성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양반과 노비, 양반과 중인, 양반과 양인의 관계를 설정하여 그 논리를 옹호하였다. 4분설에서의 양반과 양인의 신분설정은 지배신분층과 피지배신분층의 정치적사회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조선사회가 지배신분층과 피지배신분층 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신분제 사회였으나, 상호 상하 이동운동이 금지된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양반과 양인 관계에서 그 구분의 기준이 모호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피지배층으로 양인신분의 범주에 속하는 신분집단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이 조선사회의 생산 활동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국가의 재정 기반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조선왕조의 기본정책에 소규모 신분상승을 위한 명분적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이들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었다. 하지만 양인신분 농민들의 양반층으로의 신분상승은 용이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4분설에서의 양반중인양인천민의 신분체계는 조선사회의 유교이념과 생산구조를 기저로 하는 사회 신분관에 입각해 있는 것이라 하겠다.
3. 양분설(양천설)
조선 초기의 사회신분 편제에 대해 사회신분 구성이 법제적으로 양인과 천인만으로 인정되는 사회계층구조 위에서 조선 초기의 국가운영이 수행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양분설이다. 이는 종전의 4분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등장한 주장이긴 하지만, 4분설의 내용과 서로 충돌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양천론으로 표현되는 양분설에서는 “15세기 조선사회의 신분구성은 양인과 천인(노비)으로 구분해야 한다” 는 가설에서 출발하여 조선왕조의 성립이 사회계층의 양극적인 대립을 지양하여 중간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새로운 사회질서를 성립시키는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어 16세기부터는 양인자체 안에 勳戚(훈척)과 士林(사림)이 성장하면서 양반을 형성하였고 사족와 중인, 常族(상족)의 분화가 진행되어 갔다고 하였다. 이는 종래의 통념적인 조성사회 신분구성 내용과 엄청난 시각차가 있었기 때문에 4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에 의해 강한 반론 ⓛ庶孼差侍(서얼차시)의 문제에 관한 연구에서 언급하는 서얼의 존재는 양반층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②조선사회는 양반사회였고, 양반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었다→양반과 양인평민은 동일 집단적 요소가 있을 수 없다.
③양반은 아니지만 조선 초기에는 사족이라는 상류권 계층이 있었다.
에 부딪혔다.
4. 양반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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