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당과 화랑도 조사

 1  경당과 화랑도 조사-1
 2  경당과 화랑도 조사-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경당과 화랑도 조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경당과 화랑도 조사
경당
경당은 우리나라 교육 역사상 최초의 사학으로 알려진 고구려의 기관이다. 정확한 설립년대를 알 수는 없으나 독서와 활쏘기 등 문무교육을 겸했던 초·중등 교육기관이었다.
경당은 지방의 마을마다 설립된 것으로 보아 그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일반화된 교육기관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경당 교육의 대상이 반드시 서민 자제들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수도권에 사는 귀족 자제는 당연히 태학에 입학했을 것이지만 지방에 사는 귀족 자제는 경당에 입학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경당에는 귀족과 서민 자제들이 같이 어울려 수학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에서 경당은 신라의 화랑도 교육과 아주 흡사한 교육 공동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하나는 경당이 사립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국가 주도로 세워진 관학이라는 점이다. 교육내용으로 볼 때, 경당에서는 주로 독서와 활쏘기 훈련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경당이 문무교육을 겸했음을 말해준다. 문무교육을 강조한 것은 그 당시 중국, 백제, 신라와 대치하고 있던 고구려의 처지에서 볼 때 당연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문무를 겸한 교육기관을 특정 개인이 설립하여 운영했다는 것은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경당은 사립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국가에 의해 세워지고 운영된 관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화랑도
화랑도는 본래 자생적인 집단이었다. 그 당시에는 마을마다 청소년 집단이 있었는데, 이 집단은 용모가 수려하고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었던 수양 단체였다. 초기의 화랑도들 간에는 연계성이 없었다. 그러다가 진흥왕 37년에 와서야 비로소 국가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그 조직은 맨 위에 국선 화랑, 그 밑에 화랑도를 두었고, 각 화랑도에서는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화랑이 수백 또는 수천의 낭도들을 통솔하도록 하였다.
우선, 화랑들은 도의교육을 중시했는데, 이 교육의 핵심은 세속오계이다. 세속오계는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지어 준 다섯 가지 계율로서 이것은 화랑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었다. 세속오계는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으로서 앞의 세 가지가 유교적 덕목이라면 뒤의 두 가지는 불교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화랑들은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도의를 연마하고 심신을 단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상마이도의: 서로 도의로써 심신을 단련한다.
2. 상열이가악: 시와 음악을 즐긴다.
3. 유오산수, 무원부지: 명산과 대천을 찾아다니며 즐긴다.
평상시에 화랑들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하였다. 하지만 인단 전쟁이 시작되면 전사로서 활동하였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들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화랑도의 교육과정은 주로 전사로서 갖추어야 할 무술이 주된 내용이었으나 정서 함양을 위한 시, 춤, 음악 등도 중시되었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화랑교육은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군사교육의 성격도 강했지만 동시에 도의를 연마하기 위한 도덕교육,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체육교육, 정서를 함양하기 위한 정서교육의 성격도 강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