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초一超고은의 생애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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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초一超고은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초(一超) 고은론
1.생애와 활동
고은은 1933년 8월 1일 전라북도 옥구 미면 미룡리 용둔부락에서 아버지 고근식과 어머니 최점례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고은태 1950년의 6·25 전쟁 중에 이름의 끝자는 떼어내고 은(銀)이라고 자칭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그 외에도 중장, 일초(一超), 분마, 80년대 계엄하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무단(舞丹)이라 칭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파옹(波翁0이라고 스스로를 칭하기도 하였다. (고은을 찾아서. 황지우 참조)
이고 법명은 일초(一超)이다.
1942년 9세에는 인근 서당에서 백수문(白首文)부터 동몽선습, 소학, 논어 등 한학을 익혔다. 1943년에 미룡국민학교에 입학했지만 그해부터 조선어 교과과목이 폐지되어 일본어만으로 수업하게 되었다. 그는 이웃 머슴 대길이에게서 한글을 배웠으며 고전소설 및 연애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는 성적이 좋아 순탄한 학교생활을 하였다. 해방 후 4학년으로 월반하고 친일파였던 새 교장을 몰아내자는 동맹휴학에 주동자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13세에 군산사범학교에 응시하여 우수했지만 동맹휴학 사건으로 전북 교육위원회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낙방하고 다음해 군산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학업에 뜻을 잃고 2학년부터는 미술부에서 그림에 열중하였다.
16세에 하굣길에 한하운시초를 우연히 주워 그 시집을 밤새도록 읽고 문학적 충격을 받았으며 시인이 되겠다는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특히 반탁(反託) 동맹휴학, 단정(單政)반대 동맹 휴학을 즐겼다.
1950년 전쟁시기 참혹한 보복학살 사건을 겪으면서 받은 충격으로 정신의 상처가 심각한 상태였으며 1.4후퇴 이후 미(美) 제21항만사령부 운수과 검수원으로 취직하였고 군산항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일본인 항해사가 건져 냈고 화장도 하고 다니기도 했으며 두 귀에 청산가리를 넣어서 고막이 녹았으나 하나는 구제하였다.
1952년 승려혜초를 만나 일초라는 법명으로 불교의 승려가 되었으며 1957년에는 《불교신문》을 창간하여 초대 주필이 되고 그 신문에 논설, 시문 등을 발표하였다.
1958년에는 을 친구 나병재가 투고해서 조지훈 등의 천거로 한국시인협회 기관지 에 발표되면서 시단에 나오게 되었다. 이어서 서정주의 단회(單回) 추천 고은은 미당의 추천으로 등단하여 미당의 시세계에 본성적으로 이끌렸으며 1960년대 당대 문학의 최고 권력인 미당과 각별한 사이었다. 하지만 전태일 분신을 계기로 적극적인 현실 참여에 들어선 이후 더 이상 미당을 찾지 않았으며 미당 서정주 시인이 작고할 때 그의 문단 권력을 비꼬아 ‘또 하나의 정부’라는 헌사를 바친 사람이기도 하다. 교과서를 만들 시인들. 글담. 303p(스승을 떠난 제자, ‘순수’의 의미)참조
으로 등이 발표되었다.
1960년 시집《피안감성彼岸感性》출간했으며 전후문협(戰後文協) 결성에 참가했다.
참고문헌
5. 참고 자료
백두산
역사에 대한 시인의 신념을 서사적으로 구성한 작품으로 1900년부터 1940년까지의 민족해방투쟁의 역정이 파란만장하게 형상화되고 있는 역사적 응전의 기록이다. 구성은 제1부 바위, 제2부 눈보라, 제 3부 아리랑으로 되어 있고 작품의 배경은 한말로부터 1930년대의 마지막 무장독립운동기로 되어 있다. 이렇듯 백두산은 민족서사시·민중서사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민족의 파란만장한 수난사를 담고 있으면서 민중들 하나하나의 고난에 찬 삶을 묘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1980년대의 군사 폭압정치 아래에서 씌어졌기에 그 역사적 의미 또한 크다.
만인보
민족의 삶과 그 진실을 서정의 언어로 통합 시켜 놓은 작품이다.
만인보는 시인이 이 세상에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시로 형상화하여 묶은 시집이다. 시인은 그들과의 만남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공적인 것이라고 말하였다. 어떤 하잘것없는 만남 하나에도 거기에는 역사의 불가결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도 역사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삶 속에 역사가 담겨 있고 그들의 삶을 노래하는 것이 역사를 노래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시인의 어린 시절을 기본으로 만인보는 시작한다. 그것은 다음 단계에서 시인의 방랑 시대의 여러 지역과 사회 각계, 그리고 이 땅의 광막한 역사와 산야에 잠겨있는 세상의 삶을 사람하나하나를 통해 현재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시인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끝없는 시적 탐구와 역사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시인은 백두산과 만인보 두 편의 서사시에서 사람을 총체화하기도 하고, 민족을 개체의 생명성으로부터 표현한 것이다.
참고문헌
송국현. 교과서를 만든 시인들. 글담.
이건청. 해방 후 한국 시인 연구. 새미. 2004.
조남익. 한국 현대시 해설 下. 미래문화사. 1994.
황지우. 고은을 찾아서. 버팀목. 1995.
손현숙. 시인박물관. 현암사.
송기한. 1960년대 시인연구. 역락.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