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余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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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위화余華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위화(余華)
선정동기
평소 나의 독서노트와 책장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일본의 문학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일본만큼이나 가까운 중국의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런 와중에 얼마 전, 중국문화의 이해 수업시간에 루쉰에 대한 소설을 읽으라는 과제를 받았고, 수업시간에 루쉰에 대해서 배웠다. 루쉰에 대해 배우면서 말미에 현재 중국의 교과서에서는 루쉰의 작품 대신 위화의 작품이 실리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위화는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중국문학작품인 의 작가였다. 교과서란 한 나라의 기초적인 지식을 담은 책이다.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다는 것은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작품이라는 뜻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루쉰은 중국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하던데 그를 밀어낸 위화와 그의 작품은 어떤지, 어떠한 영향력이 있는지 궁금하여 선정하게 되었다.
기존 연구 및 평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위화는 현존하는 중국 작가 가운데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소설가다. 1983년 단편소설를 발표하며 작가활동을 시작,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한국에서 위화의 소설은 1990년대의 몇몇 중단편을 제외하고는 장편소설을 비롯한 모든 소설과 수필이 번역되어있다. ≪인생≫이 1997년에 가장 먼저 번역 출판 되었고 이어서 ≪許三觀매혈기≫는 1999년에 ≪내게는 이름이 없다≫,≪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는 각각 2000년에 ≪가랑비속의 외침≫은 2004년에 모두 번역·소개 되었다. 마지막으로 ≪형제≫는 2007년에 출간되었다. 또 최근에는 그의 창작론이 들어있는 수필집≪영혼의 식사≫가 출간되었다.
위화 작품에 대한 중국 측 연구는 매우 많으나 대부분 특정한 시기나 한 작품의 연구에 집중되어 이루어져있다. 예를 들면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풍격의 변화에 대한 연구와 이 시기 작품에 관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어 있지만, 1990년대에서 2000년대 ≪兄弟≫에 이르는 풍격의 변화와 작품에 관한 연구는 아직은 깊이 있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위화작품의 사회적 의의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적은편이다.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위화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박사학위 청구논문이 발표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5년과 2006년에 위화가 네 번째 장편소설 ≪兄弟≫ 상권과 하권을 내놓은 이래 기본적으로 그 작품의 양적인면에 있어서 박사학위논문의 분량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 이≪兄弟≫가 세 번째에 해당하는 창작풍격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면서 이를 통하여 위화작품의 풍격변화를 다시 재고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고 이러한 이유들로 위화의 소설은 박사 연구 논문의 연구대상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에서 위화작품의 영향력과 그가 실제창작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과 이에 근거한 작품의 창작과정과 독자의 반향을 고려한다면 중국 문학 연구자만이 아닌 국내 일반 문학 연구자들에게도 위화의 소설연구는 일정 연구 가치를 제공한다.
본문
지금까지 10여 편의 소설을 펴낸 위화는 중국 3세대 작가군을 일컫는 ‘선봉파(先鋒派)’의 대표주자로 손꼽힌다. 선봉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연한 실험정신과 탐구정신으로 무장한 일련의 젊은 작가군을 일컫는 말이다. ‘신조(新潮·뉴웨이브) 소설가’라고도 불린다. 선봉파는 선두주자인 위화를 비롯해 마위안(馬原), 홍펑(洪峰), 쑤통(蘇童), 거페이(格非) 등이 꼽힌다. 그중 위화는 지난 2002년 중국 작가 중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1998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2004년) 등 세계적으로도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그가 쓴 주요 작품 역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일본, 프랑스 등지에 일제히 소개된 바 있다. 위화의 작품 중 일부는 영화로도 소개됐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은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원제: 活着)’을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1995년 ‘인생’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며 국공내전, 공산혁명,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을 겪어내는 부부의 인생이 궁리와 거요우(葛優)의 연기로 잘 나타난다. 이 영화는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위화가 본래부터 필명을 날렸던 것은 아니다. 펜을 잡기 전 위화는 시골마을에서 5년 동안 이를 뽑는 치과의사로 일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이후 위화는 “좁은 입 구멍만 들여다보기 싫다”며 소설가의 길을 택했다. 일본 센다이(仙台) 의전에서 유학하다 “병든 몸을 고치기보다 중국인의 병든 정신을 치료하겠다”며 소설가로 전향한 루쉰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위화가 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곳은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다. 그림 같은 풍광의 서호(西湖)를 끼고 있는 항저우는 1960년 위화가 태어난 곳이다. 위화란 이름은 어머니 위페이원(余佩文)과 아버지 화즈츠(華自治)의 성(姓)에서 한 글자씩을 따왔다. 항저우는 과거 백낙천(白樂天·백거이)과 소동파(蘇東坡·소식) 등이 머물며 글을 쓴 곳이다. 때문에 위화를 얘기할 때는 항저우의 문학적 전통이 늘 언급된다.
치과 일을 그만둔 후 위화는 베이징에 있는 루쉰문학원에 들어가 소설공부를 하며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1950년 설립된 루쉰문학원은 중국의 젊은 청년작가들을 키우는 산실이다. 위화는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란 작품으로 등단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가랑비 속의 외침 ’ ‘산다는 것은’ ‘허삼관매혈기’ ‘형제’ 등의 작품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자리매김했다.
참고문헌
참고자료
여화 소설 연구 - 신의연 (충남대학교 대학원, 2009)
교과서에서 루쉰 밀어낸 위화(余華) 중국 문학계 세대교체 바람 - 주간조선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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