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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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부식의 시대
◎ 고려전기 대표적인 문벌귀족 경주김씨 가문의 김부필, 김부일, 김부식, 김부의는 신라 왕실의 후예로서 경주의 주장(州長)인 위영(魏英)의 증손자이며 국자좨주 좌간의대부(國子祭酒左諫議大夫) 근(覲)의 아들이다. 네 형제 는 모두 과거로 진출하였으며, 그 가운데 부일(富佾)·부식·부필(富弼)은 문한(文翰)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부식일가 최상의 위치에 올라서면 도덕적 정신적 의무가 있다는 것 알고 실천하였으며, 사상을 가다듬고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긴요한 과제임을 강하였다. 유학의 이념을 정치와 문학의 기준으로 삼아 유학을 심화시키면서 문학도 아울러 가다듬는데 진전을 이룩했다.
▷김부식 (金富軾, 1075~1151)
김부식은 1096년 과거에 급제, 20여년 한림원(翰林院) 등 문한직(文翰職)에 종사하면서 유교윤리와 이념의 실현에 노력했다. 이자겸의 난을 거치면서 재상에까지 이르고 문명(文名)이 뛰어나 송나라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또 묘청일파가 서경천도설을 주장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경에서 난을 일으키자 개경에 있던 정지상, 김안, 백수한, 등을 동조세력이라 하여 그들을 제거하였고, 서경에 원수로 임명되어 묘청의 난을 진압하였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데 결정적으로 공을 세운 그에게 권세와 명예가 주어지게 된다. 그는 사직 후 『삼국사기』 50권은 편찬하고 『예종실록』, 『인종실록』의 편찬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림원에 있을 때는 김황원과 이궤의 뜻에 따라 고문체 문장의 보급에도 노력하고 당시 유행하던 육조풍의 사륙변려문에서 당송시대 발전한 고문체를 수용하려고 하였다. 삼국사기의 편찬도 이러한 문체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그의 문집이 20권이 있었다 하나 전하지는 않고 『동문선』, 『동문수』에 일부 작품이 전한다. 1153 (의종7)에 중서령(中書令)에 추중되었고, 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김부식은 문학은 가치관을 바로잡고 질서를 이룩하는 근본이라고 여겼다.
기능-문의와 명분을 바르게 하는데 소용
내용-널리 규범이 될 수 있는 바를 갖출 것
표현-공허한 수식을 삼가고 질박하면서도 전아한 고문 택함
(변려문을 대단하게 여기는 그릇된 풍조 벗어나야한다)

보잘것없는 선비는 대대로 내려오는 푸른 전(氈)을 일찍 물려받았으나 아로새긴 붓은 아직 꿈꾸지 못한다. 어려서 장구와 수식을 공부하고 장년에 이르러서는 전모(典謨)를 즐기며 음풍(吟諷)하고 남기신 기풍을 못내 찬양하며 기어이 봉(鳳)에 붙은 영광을 차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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