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의 성립과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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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산문의 성립과 분화
조상들과 자신의 행적을 기록하여 후손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고대 중국인들의 소망의 결실인《서경》은 중국 최초의 역사기록으로 산문쓰기의 본보기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서경》은 단순한 역사기록을 넘어 풍부한 문학성을 지닌 작품으로 역사가의 상상력, 다양하고 세련된 문학적 기교, 생동감과 현장감 넘치는 언어 구사를 특징으로 지닌다. 중국의 산문은 과거와 현재의 발자취를 전달하며 가치판단을 의도하는 역사산문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상적·철학적 산문의 두 갈래로 전개되었다. 사상적·철학적 산문은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입장과 학파, 즉 제자백가로 불리는데서 연유하여 그들의 산문은 제자백가의 산문, 제자백가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정치, 경제적 현실에 대한 진단과 국가·사회적 질서의 제시를 그 목적으로 삼으면서도 추상적, 딱딱한 서술방식 보다는 대화, 현장감 넘치는 사건 묘사, 다양한 비유와 상징 들을 폭넓게 활용하여 문학적 성취 또한 높다.
1. 서경(書經)
①서경의 성립과 과정
《서경》은 중국 운문문학의 시원인 《시경》과 함께 중국 고대문학의 양대 뿌리로 산문문학의 시원이다. 한재 이전엔 서서라 불렸으며 이후 유가사상 지위 상승으로〈서경(書經)〉혹은〈상서(商書)〉로 불렸다.《한서(漢書)》의〈예문지(藝文志)〉에는 “옛날에는 왕실에서 대대로 사관을 두었는데, 좌사는 말을 기록하고 우사는 일을 기록하였으며 일의 기록이 《춘추(春秋)》가 되었고, 말의 기록이《서경》이 되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미루어《서경》은 단순 역사 기록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고대 왕실에서 소장해 왔던 공적인 기록을 모아놓은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서경》은 주나라 원본이 아니라 분서갱유(焚書坑儒) 때 소실되어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유가가 지배이념이었던 한나라 때 유가경전 복구 작업이 시작되면서 이때《서경》복구 작업 또한 시작되었다.《서경》은 기원전 2세기 중반 유학을 진흥시키기 위해 한(漢) 문제(文帝)가 조조를 시켜 진나라에서 박사를 지낸 복생(伏生)의 기억에 의존하여 전수받아 기록하게 하였는데 조조가 금문(춘추시대 문체)으로 기록하였다 하여 금문상서(今文尙書)라 불리는 계통과 공자의 집 벽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고문상서(古文尙書)의 두 계통이 전해지는데 고문상서는 춘추시대의 문체인 금문과는 대비되는 고문으로 쓰여서 고문상서라 불리게 되었고 인정을 받지 못하여 위·진·남북조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학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함께《서경》의 유래는 불분명하나 오랜 세월 유가 최고 경전의 하나로서 권위를 지녀왔고 중국인들이 진짜로 믿어왔다는 점에서 사상사상, 문학사상 의의가 있다. 《서경》은 총 58편으로 옛날 각 시대의 사관들의 기록을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쓰인 시대는 전국시대로 알려져 있다. 《서경》의 우서(虞書) 5편은 태평시대에 나라를 다스린 요(堯)·순(舜)의 말과 업적을 기록하였고, 하서(夏書) 4편은 하(夏:BC 2205경~1766경)에 대한 기록을 그 내용으로 하나 역사적으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상서(商書)17편은 은(殷)나라의 건국과 몰락(BC 1122)에 대한 기록으로 은나라의 멸망 원인을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타락이라 탓하고, 주서(周書)32편은 BC 771년까지 중국을 다스렸던 서주(西周)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②서경의 내용
《서경》은 역사시기 첫 단계에서 나온 중국의 글이 어떤 형태인가 잘 보여준다. 《서경》의 글들은 쓰인 시기, 장소, 기록자가 다르며 연속성이 없다. 공자에 의해 편찬되었다고도 하지만 오랜 편집과 전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문장의 성격이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매우 세련된 다듬어진 형태를 취한다. 주서의 대고~고명의 12편의 글은 말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뜻을 직접 전달하는 직접화법을 사용한 훈시의 형태이다.《서경》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임금이 신하에게 당부하는 훈계, 백성에게 내린 포고와 명령이나 임금에게 올린 신하의 진언, 전쟁을 앞두고 백성과 장병들에게 한 임금의 훈시, 대신들 사이의 대화 등이 전해진다. 이를 통해 구성 초기의 중국문장은 직접화법이 주축을 이루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대화체를 광범위하게 운용하는 고대문언의 특징이《서경》에 잘 나타나있으며 대화체를 원용하지만 당시의 일상용어와 전혀 다른 수사적이고 세련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한자의 심미성 또한 충분히 발휘하였다.《서경》은 사실의 기록을 본질로 하는 역사서이면서도 허구적인 구성 방식을 적절히 활용하였다(ex 금등). 의도적으로 허구적 이야기를 도입하여 소설을 방불케 하는 대목 또한 많다. 시기적으로 나중에 쓰인 글일수록 길이가 길고 복잡하며 수사기교가 동원되었고 대화체보다는 논설적인 서술문 형태를 취한다.《서경》에서 발휘되기 시작한 중국산문의 특성은 전국시대와 한대를 거치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엄정한 기록이라는 기사와 군자로서 세계의 질서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입언의 글이라는 두 갈래의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후세 산문의 규범으로서 후에는 변려문(儷文)으로 발전하였고 직접화법, 문답체 문장은 후세의 사서(史書)를 비롯하여 산문 전체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서경》이 매우 가치 있음을 알 수 있다.
※ 참고자료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상서(尙書) 16편이 230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27일 연합뉴스는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경화시보(京華時報)가 칭화(淸華)대학 연구팀이 이 대학의 졸업생이 기증한 죽간(竹簡·종이가 발명되기 전 문자를 적는데 쓰인 대쪽)인 칭화간(淸華簡) 2388점을 연구,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상서 16편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상서는 서경(書經)으로도 불리며, 공자(孔子)가 스스로 편정(編定)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요순(堯舜)부터 서주(西周)시대 말(BC 8세기경)에 미치는 오랜 기간의 문서를 모은 내용으로, 대부분은 제왕의 선유(宣諭)와 명령사(命令辭)를 담고 있다. 그러나 3000여 편에 달하는 원본이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BC 213년)로 소실돼 현재는 고문(古文) 25편, 금문(今文) 33편 등 공자의 집 벽에서 나온 58편만 전해지고 있다. 연구팀이 해독해 공개한 보훈(保訓)은 주 문왕이 아들 무왕에게 요,순 임금이 어떻게 중도(中道)를 구했는지를 들려주는 유언으로 확인됐다. 또 무왕 8년 기국(耆國)을 정벌하고 돌아온 무왕이 직접 지은 악시(樂詩) 여러 편도 처음으로 실체가 밝혀졌다.
[한국경제]2009-04-27
2. 역사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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