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정리 춘향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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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논문정리)
춘향전 연구
은 국내외적으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18세기 초엽에 형성된 이래, 시대를 달리하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간의 연구는 의 성립배경과 형성문제와 같은 기초적 단계에서부터 주제, 서사구조와 같이 보다 심화된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어 왔다. 이제까지 알려진 의 근원설화는 열녀설화, 암행어사설화, 伸寃설화, 염정설화로 분류될 수 있다. 열녀설화는 여자가 정절을 지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설화이다. 의 전반부에는 춘향이 이도령과 백년가약을 맺은 후에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라는 이유에서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열녀설화에서 주로 다루어지던 내용이었다.
김동욱은 근원설화를 4가지로 분류하여 그 하위에 개별적 설화들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이런 다양한 설화에서 의 기원을 찾기 보다는 단일한 설화로 그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설성경은 의 전반부는 염정설화나 신원설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리고 후반부는 암행어사설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두 가지 설화의 합성을 통해 이 나왔다고 보았다. 또한 그보다 더 후기 학자인 김종철은 작품의 구조에 치중한 연구를 통해 의 핵심구조에 대응하는 근원설화는 오직 염정설화 뿐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소설 이 판소리 에서 양식 변형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학설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를 확고히 한 사람은 김동욱이다. 그는 김태준이 『조선소설사』에서 “春香傳의 古本은 옛날이야기책 모양으로 傳해 오던 것을 광대들의 입으로 옮기기 시작하여 … 歌劇으로 완성된 모양이니”라고 하며 이 ‘근원설화 → 소설 → 판소리’의 변이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었다는 문장체소설 선행설을 제기한 데에 대해 徐斗銖와 金三不의 논의를 이어 받아 ‘설화 → 판소리 → 판소리 소설’로의 轉移를 주장하고 이를 정설화 시켰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전까지 무분별하게 논의되어 오던 의 근원설화를 그 성격에 따라 근원설화와 발생설화로 나누고 이들의 상관성을 통해 이를 확고히 한 것이다.
또한 그는 판소리 소설의 작가로써 광대의 역할을 강조하고 그 입지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을 정착 문예물로 인식하고자 했던 학자들은 춘향전의 작자가 분명하지 않게 되자 판소리 사설의 유려함을 들어 어느 大文豪가 마련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이며 신분이 어떠한가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김동욱은 의 작자를 대문호라고 보는 것은 너무 막연할 뿐 아니라 선행 단계인 판소리와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국가의 儺禮나 山臺劇에 광대가 참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고증한 다음 근원설화가 유랑광대에 의해 판소리로 이행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광대를 작자로 본 그의 견해는 의 적층문학적, 민중문학적 성격에도 부합되는 것이므로 이후 많은 학자들에게 수용되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판소리의 발생에 대한 논의로는 정노식이 제시해 이혜구, 서대석 등에게 이어지는 무악기원발생설이 학계에서 가장 유력할 학설로 평가받고 있다. 정노식은 춘향가가 ‘남원지방의 설화→살풀이굿→문호의 첨삭 세련→광대의 부연과 윤색’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의 논의는 이후의 학자들에게 부분적으로 수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설성경은 이를 참조하여 이 ‘춘향굿 단계→춘향소리굿 단계→춘향소리 단계’를 거쳐 형성 발전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다양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으나 춘향전이 巫樂이나 살풀이굿에 기원을 두고 판소리로 형성되어 판소리 소설로 나아간 것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소설 은 조선후기 발달하기 시작한 판소리계 소설의 최선봉에 위치해 있는 작품이다. 과 같은 판소리계 소설의 작품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 원류를 판소리에 두고 있다. 이러한 판소리에서 그 문학적 요소인 사설이 분화되어 소설 양식으로 옮아온 것이 바로 이다. 즉, 이미 문학 영역에서 가장 대중적인 기반이 튼튼하던 소설 양식에다 판소리극의 문학적 측면인 사설을 차용하여 기록하는 소설화 작업을 통해 판소리계 소설 이 탄생한 것이다. 은 서사적인 이야기의 축과 서정적인 가요의 축이 조화롭게 결합됨으로써 문학예술이 가꾸어온 가장 포괄적인 제 요소를 잘 응집시키고 있다. 은 당시 소설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군담계 소설과는 다른 판소리계 소설 양식의 출현에 선구적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 고전소설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은 판소리가 가지고 있던 개방성과 적층성의 성격을 이어받아 오랜 시간에 걸쳐 미시적 구조를 거듭 세련화 시키고 언어미학의 성숙성을 추구하며 발전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민들의 생각은 물론 양반들의 생각까지 담아내고, 시와 산문, 상층언어와 하층언어, 현실과 소망, 몰락과 상승, 슬픔과 기쁨, 헤어짐과 만남, 약자와 강자 등의 다양한 양극적 대립항들을 수렴함으로써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이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판소리계 소설이 지닌 개방성과 유동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은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시대적 변화상을 작품 속에 잘 반영하고 근대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사상을 주제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당대의 민중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제에 관한 논의는 다소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대개 신분을 초월한 두 사람의 애정을 강조하며 신분제를 부정하고 나아가 당대의 부당한 현실에 대한 서민들의 저항으로 보고자 하는 관점이 유력하다. 즉 은 당대의 시대상황을 비판하고 신분해방, 부정관리 척결 등의 민중적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은 18세기 초에 판소리 로 불려지기 시작해 소설 으로 양식 변화를 거치면서 3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는 작품이다. 일찍이 판소리 사설의 개방성과 적층성을 이어받아 작자와 작품 수용자의 개인별, 지역별 취향에 맞게 윤색되어 100여종에 달하는 고전 소설 중 가장 방대한 양의 이본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새로운 소설양식의 출현에 선구적 역할을 하고 근대 이행기라는 시대상을 포괄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이본의 수로 보나 대중적 인기도로 보나 그리고 문학사적 위치에서 보나 은 가히 우리 고전문학사를 대표하는 작품이며 으뜸 중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