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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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서론
전 세계적으로 위치한 여러 나라들의 체제를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당연시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러한 민주주의는 어디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그들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리포트의 주제를 아테네 민주정으로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필자역시 잘 알고 있지 못했던 아테네 민주정 민주정과 민주주의는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민주정은 demokratia라고 쓰고. 민주주의는 democracy라고 쓰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은 다른 말이다. 필자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서 행해진 국가체제는 민주정이라고 서술하고, 근대의 국가체제는 민주주의로 서술을 하려고 한다.
에 대하여 조사해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어디서 기원하였고, 과정은 어떠했는지 말하고 싶다. 더 나아가 고대 민주정과 근대 민주주의의 차이를 파악하고, 아테네 민주정의 발달과정, 특징, 한계와 의의에 대하여 서술하려고 한다.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테네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정은 근대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하였다. 그 예로 참정권은 아테네인들 전부가 아닌 20세 이상의 아테네인인 부모를 가진 성인 남자들만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아테네인들은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였다. 그밖에 여러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서론에서 많은 언급은 하지 않고 나머지 차이점들은 본론에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원론적인 측면인 민주정의 어원에 대하여 알아보자. 민주정은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라고 쓴다. 이 말의 어원은 인민을 뜻하는 데모스(demos)와 힘이나 지배를 의미하는 크라티아(kratia)의 합성어로 ‘인민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나종석,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제도의 이상과 현실에 대하여」, 사회와 철학 제8호, p. 9, 참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 아테네는 완벽한 인민에 의한 통치를 하지 못하였다. 참정권은 일부 시민들에게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편의상 이 단어를 썼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하늘에서 그냥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4.19혁명, 5.18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을 통하여 힘들게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는 과연 어떤 방식을 통하여 민주정을 획득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당시에도 엄청난 피바람을 몰아가며 혁명, 항쟁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획득하였을까? 아니면 뛰어난 지도자의 노력으로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얻었을까? 어떻게 보면 아테네 민주정은 힘겹게 얻은 것은 아니었다. 솔론의 개혁부터 페리클레스의 개혁을 거친 아테네는 유혈보다는 무혈에 가깝게 개혁에 성공하여 민주정을 얻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개혁을 하려고 할 때 반대파들의 축출과 같은 유혈문제도 있었지만 근대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흘린 피의 양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무혈이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결코 피를 흘리지 않고 얻었다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서론에서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다시 본론에서 이야기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필자는 이번 리포트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이다. 필자는 아테네 민주정에 대하여 ‘솔론이 무슨 개혁을 하였고, 그 개혁의 내용은 이렇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어떤 개혁을 하였고, 그 내용은 이거다.’등과 같은 세세한 내용에 비중을 두기보다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아테네 민주정의 특징과 같은 약간 굵은 내용에 비중을 두려고 한다.
2. ⑴ - 아테네 민주정의 발달과정
아테네 민주정의 발달과정을 알아보기 이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당시의 아테네의 사회모습이다. 당시 아테네가 자리 잡고 있었던 아티카 지역은 군사적 침략도 없는 지역이었고, 적대 세력 간의 내분도 없었다. 아티카의 자연 조건은 비옥한 농업 자원과 더불어 풍부한 지하자원 및 훌륭한 항구를 갖추고 있었다. 그 결과 아테네는 농업 국가로 남지 않고 활발한 상업과 도시 문화를 급속히 발전시켰다. E.M.번즈, R.러너, S.미첨 옮긴이 박상익,『서양 문명의 역사 - 상』, 소나무, p. 140, 참고.
아테네가 처음부터 민주정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8세기까지 아테네는 다른 폴리스들과 같이 왕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아레이오파고스(Areopagos)회의 아레오파고스 회의: 아테네의 귀족회의로 초기에는 아테네 전반에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솔론의 개혁을 시작으로 점점 더 권한이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에피알테스의 개혁으로 인하여 살인죄 처벌을 제외한 사법권과 여타 권한들이 민회와 500인 평의회 등으로 옮겨지면서 그 세력이 축소되었다.
가 점차 왕의 권력을 박탈하였다. 아테네는 왕정에서 과두정으로 변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포도와 올리브의 재배법이 유입되면서 내부적으로 귀족과 민중들의 빈부격차라는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중산층의 불만은 커져가고 이러한 내부적 대립 속에 솔론이 집정관으로써 등장하였다. 솔론은 부채탕감과, 채무 노예제 금지, 재산에 따른 아테네 시민의 4계층화 정책 4계층화 정책 : 첫 번째 계급 - 펜타코시오메딤노이(연간 곡물 소득 500메딤노이 이상), 두 번째 계급 - 히페이스(기사계급, 300~500메딤노이), 세 번째 계급 - 제우키타이(보병, 200~300메딤노이), 네 번째 계급 - 테데스(200메딤노이 이하, 토지소유하지 못한 자들).
참고문헌

김경희.「데모크라티아(Demokratia)를 넘어 이소노미아(Isnomia)로; 아테네 민주정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혼합정의 이념에 대하여」. 한국 정치학 회보 제 40집 제 5호. 2006.
김지희.「민주주의와 올림픽의 기원. 아테네」.국토 2004년 7월호. 2004.
나종석.「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제도의 이상과 현실에 대하여」. 사회와 철학 제8호. 2004.
최영진.「비극적 세계관과 아테네 민주주의」.國際政治論叢 제49집 4호. 2009.
E.M.번즈, R.러너, S.미첨 옮긴이 박상익.『서양 문명의 역사 - 상』. 소나무. 2007.
H.D.F키토. 박재욱역.『The Greeks』.갈라파고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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