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사 고대 지중해 세계와 우리나라 - 고대 로마 문화의 신라 전파설에 대한 개인적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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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대 지중해 세계와 우리나라
-고대 로마 문화의 신라 전파를 중심으로 -
- 목 차 -
1. 머리말 2. 고대의 동ㆍ서 문명 교류
3. 로마 문화의 신라 전파 4. 신라전파설에 대한 개인적 견해
5. 맺음말
1. 머리말
근대 이전 시기부터 동ㆍ서 문명의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져 나갔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통일신라시대 국제 항구도시였던 울산항을 비롯하여, 장보고가 동아시아 해상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청해진에서도 아라비아 상인을 비롯한 서역상인들과 활발한 해상활동을 전개하였다. 고려시대에도 벽란도라는 국제항을 만들어 서역상인들과 많은 문명교류를 하였다. 이 무렵에 바로 한국의 영어표기인 ‘Korea’의 기원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미 고대시기부터 동ㆍ서양은 활발한 문명교류를 이룩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책을 읽던 중 이러한 기존의 동ㆍ서양의 문명교류사를 완전히 뒤바꾸는 흥미로운 가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신라의 문화가 로마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이다. 요시미즈 츠네오 편의상 요시미즈 교수로 통칭하기로 하겠다.
가 쓴 ‘로마문화 왕국, 신라’라는 책에서 저자는 책의 서론 부분에 “한국 고대사와 일본ㆍ유라시아의 고대사에 대한 고정 관념과 통념을 일거에 무너뜨릴 만한 새로운 사실” 요시미즈 츠네오, 『로마문화 왕국, 신라』,씨앗을 뿌리는 사람, 1999의 21p 인용.
이라고 서술했는데 그렇기에 이 가설이 흥미로운 주제임에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신라 문화가 외부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에는 2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하였고, 본고를 서술하면서 중점적으로 쓰이는 로마기원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북방의 기마민족의 영향을 받아 문화가 이루어졌다는 북방민족기원설 이러한 북방민족의 요소에는 시베리아와 북방유목민족 그리고 러시아,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문화가 포함된다.(홍승희,「4~6세기 신라고분 출토 유물에 나타난 北方要素」,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학위논문(석사), 1999의 7p 참조) 또한 로마문화의 수용에서도 북방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되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이다. 현재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제시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주로 한국학자들은 북방민족기원설에, 요시미즈 츠네오와 같은 일본 학자와 일부의 한국학자들은 로마기원설 김차규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요시미즈 츠네오의『로마문화 왕국, 신라』에서 로마(비잔티움) 유리용기들이 단순히 지중해 연안에서 흑해를 북상하여 남러시아를 거쳐 초원길을 따라 북중국을 통해 유입되었다는 설 보다는 비잔티움 제국의 동방교역정책으로 신라에 유입되었다는 설에 주목하고 있다.(김차규,「로마(비잔티움)유리용기의 신라유입 과정에 대한 해석」,『西洋中世史硏究』, 24, 韓國西洋中世史學會, 1999의 3p참고)
에 초점을 맞추고 첨예한 논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주 참고문헌으로 제시할 『로마문화 왕국, 신라』라는 책도 일본학자의 성격상 식민사관의 논리 중 하나인 정체성론과 민족성론에 자유롭지 못한 논조의 글을 쓴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반감이 있었고,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검토하면서 일본인 한국고대사학자의 논조를 인용한 것도 나에게 큰 동의를 구하기 어려웠다. 또한 지나친 끼워 맞추기 식의 논리로 인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것도 미리 밝혀둔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편향적인 시각을 철저히 배제하여, 주로 통념으로 인정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다룰 것이며, 이러한 로마기원설에 대한 여러 사학자들의 다른 시선을 참고하여, 내가 생각하는 지중해 문화의 한반도 전파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본고에 정리할 것이다. 고대사에 대한 학식이 많이 부족한 탓에 깊은 연구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후에 나에게 제시될 사관에 대한 정립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바이다.
2. 고대의 동ㆍ서 문명 교류
요시미즈 교수의 책에 따르면 신라의 경우 중국과의 교류가 매우 소원했다고 한다. 진(晉)에 조공한 후 북제에 조공하기까지 신라는 278년 동안 4회만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진한과 마한은 국가적 성격이 분명히 다른 나라였고, 중국에서는 진한과 변한을 같은 나라로 생각하고 있었던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중국 측의 기록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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