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정치에 대한 자기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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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의 정치에 대한 자기의 평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R E P O R T
< 세종의 정치에 대한 자기의 평가 >
여는 말
오늘의 한국사회는 대내외적으로 조선 건국 초기의 혼란 양상과 사뭇 닮았다. 그 때문에 세종시절과 오늘을 비교하는 학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나 또한 이 때문에 세종의 국가경영이란 수업을 듣고, 세종의 정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세종은 정치, 경제, 문화적 측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아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창달한 성군으로서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속의 세종은 무척 부지런하면서 주어진 목표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술수와 위협도 가했던 냉정한 현실정치가로 나타나 있다. 국가 CEO로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경국의 리더십을 발휘한 그를 짧은 지식의 나의 평가로서 몇 차례에 걸쳐 감히 재조명해본다.
세종은 잠시도 게으르지 않았던 지도자
세종이 사망했을 때, 사관은‘잠시도 게으르지 않았던 임금’이었다고 평했다.《세종실록》에서는 세종의 똑똑하고 부지런한 면면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임금으로 즉위해서는, 이른 새벽에 의관을 갖추고 날이 밝으면 조회를 받고, 다음에 정사를 살피고, 그 다음에 윤대하고, 경연에 나갔는데, 일찍부터 조금도 해이함이 없었다.”세종은 어려서부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책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가 형 양녕을 제치고 왕위 계승권자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도 공부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세종은 1418년 왕세자에 책봉, 동년 8월 22세의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세종은 국제사적 변화와 고려 이후의 어지러운 정치 현실을 온몸으로 감지하고, 변화의 시대에 맞는 지혜를 얻고자 책을 가까이했다. 새벽 5시경부터 한밤중까지 책을 보며 지식탐구에 몰두했고, 이론적인 공부 외에 실무적인 업무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은 어디에서든 빛을 발하는 듯하다. 세종 또한 시대를 뛰어넘는 정치가로 현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현인이라 하겠다.
탁월한 인재등용 (적절한 인재의 발탁)
세종이 정치, 그리고 행정가로서 보여준 탁월한 면모는 인재(人材)의 적절한 활용과 배치에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적절한 인재의 발탁이었다. 적절한 인재의 발탁의 대표적인 예로 장영실과 김종서, 박연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장영실은 본래 태종 이래 궁궐에 들어와 있던 관노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가 과학 기술 등에 많은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세종이 그를 과감하게 발탁하여 그 재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세종의 배려와 두터운 지원에 힘입은 장영실은 상호군의 지위에 까지 올라 이천 등과 함께 옥루기륜, 간의 등 각종 과학 기계들을 제작하여 조선의 과학 기술을 한 단계 높이는데 기여하게 된다. 또 김종서의 발탁도 주목해 볼만한 일이다. 본래 김종서는 문신 출신이었다. 문신 출신이던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는데, 세종은 6진 개척이라는 국토 확장의 중대사에 그를 총 책임자로 삼아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었고, 이러한 세종의 기대에 부응하여 김종서는 6진 개척이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김종서에 대하여 주변 신하들의 시기가 많자, 세종은“이 일은 종서가 있으나 내가 없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요, 또 내가 있으나 종서가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라고 극찬한 것에서도 알 수있는데, 세종의 김종서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두터웠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박연의 발탁도 세종의 인재 발탁 중 성공한 사례에 속한다. 박연 또한 음악에 많은 소질은 있었으나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세종의 아악 정리 과정에 있어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여 세종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인사의 문제는 비단 과거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인사는 곧 만사라 하여 적절하게 배치되고 활용된 인재만이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재의 효율적인 활용과 배치를 세종은 이미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현전의 운용
참고문헌
참고문헌
­ 박영규, 「세종대왕과 그의 인재들」, 들녘출판사, 2002
­ 박현모, 「세종의 수성 리더십」, 삼성경제연구소, 2006
­ 최억기, 「CEO 세종대왕 인강경영 리더십」,이지북 , 2004
­ 김영수, 「세종의 국가경영」, 국민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