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계몽기 단군신화의 탈신화화와 재신 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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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계몽기 단군신화의 탈신화화와 재신 화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근대계몽기 단군 신화의 탈신화화와 재신화화」 요약
조현설(서울대 교수)
1. 문제제기
단군이 우리에게 여전히 신화로 존재하는 이유는 단군을 신화로 만드는 표상체계 때문이다. 건국신화 뿐만 아니라 개천절 노래나 홍익인간이라는 교육이념과 같은, 단군이 ‘자연스레’ 민족의 기원으로 인식되는 것들이다. 이렇게 단군에 관한 특정한 이미지를 국가적 작업에 의해 조직하고 고착시킨다. 이러한 작업에 의해 단군은 여전히 ‘신화’로 소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군 이미지들의 발원지는 어딘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를 알기 위해 ‘근대적’인 것들이 배태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근대 계몽기’로 들어가봐야 한다.
2. 근대계몽기 교과서와 단군 이미지의 근대적 전환
1895년부터 1910년까지 수십여 종의 교과서들이 출판되었는데 단군과 고저선의 역사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은 주로 ‘역사교과서’이다. 이들 교과서에는 두 가지 상이한 경향이 보인다. 단군을 하늘에서 태백산 단수 아래로 내려왔다는 ‘신인(神人)’과 단군은 인간으로 태백산 단수 아래서 태어났다는 기술이다.
두 계열에 해당하는 교과서들을 보면 신인(神人) 계열의 책은 네 권, 인(人) 계열은 열네 권으로, 인(人)계열이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인(人)계열의 교과서들은 모두1905년 이후에 간행되었고 신인(神人) 계열의 교과서는 1906년 이전의 자료들이다. 이는 곧 우리에게 근대 계몽기 교과서의 단군 인식이 1905~1906년 무렵을 전후로 전환, 정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인 계열의 자료들은 단군이 인간이지만 신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건국 이야기에 신기하고 이상함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조선역사』(1895)를 보면, 東方에 처음에 君長이 無더니 神人이 有야 太白山 檀木下에 降거늘 라고 하여 단군이 신인 이라는 점, 그가 박달나무 아래로 강림했다는 점을 분명히 기술한다. 물론 환인과 환웅이 나오지 않고, 환웅과 웅녀의 신화적인 결연이라는 핵심적 이야기가 삭제되어 있어 『삼국유사』와 거리가 있다. 『조선역사』의 단군인식의 기원은 권근의 『응제시주』(1396) “옛날 신인이 박달나무 아래 내려오자 국인이 임금으로 세웠다”라는 구절에 닿아있다. 여기에는 여전히 신이를 부정하지 않는, 건국에는 신성(神聖)이 따른다는 신화적 인식론이 작동하고 있다. 즉, 19세기 말 신인 계열 역사교과서에는 갑오개혁이라는 계몽적 흐름에도 여전히 신화적 인식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택영이 편찬한 역사교과서를 보면 변화가 보인다. 『조선역대사략』(1895) 東方初, 無君長, 有九種夷, 草衣木食, 夏葉冬穴會, 神人降于太白山檀木下,…을 보면 『조선역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동국역대사략』(1899)을 보면 東方初, 無君長, 人民草衣木食, 夏巢冬穴. 有人生于太白山檀木下 神靈明智…神人降이라는 표현이 人生으로 바뀐 것이 보인다. 그리고 이는 『역사집략』(1905)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동국역대사략』은 ‘인간’이 신령하다고 하여(神靈明智) 신성성을 완전 부정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건국의 신이를 인정하는 듯한 기술 태도가 드러나 있어 일단의 인식론적인 혼재를 노정하고 있다. 『역사집략』에서 단군에 대해서는 『동국역대사략』과 비슷하게 기술한다. 하지만 ‘범례’에서 불교 승려가 남긴 단군 관련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김택영의 이런 인식의 혼재와 변화는 신인 계열에서 인 계열로의 전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대동역사』(1905)를 보면 환인, 환웅, 단군이 모두 등장하지만 그 관계는 환인이라는 자(者)가 아들 환웅을 낳고 다시 환웅이 단군을 낳는 관계, 즉 인간적 혈연관계로 설정되어있다. 이런 관계는 『동국사략』(1906)에 이르면 더 분명해진다.- 祖는 桓因이오, 父는 雄이 太白山 檀木下에서 王을 誕生뫼 聖德이 有지라… 1905~6년 이후 교과서에서 단군은 왕으로 갖추어야 할 성덕이 있어 사람들에 의해 추대되어 조선을 세운 훌륭한 인물일 뿐이다. 즉 탈신화화, 탈신성화되고, 합리적인 이미지를 지닌 고조선의 건국주가 된 것이다. 단군과 고조선은 이시를 건너면서 철저히 역사화된 존재로 재탄생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두 개의 커다란 담론은 독립과 문명이었다. 중화체제와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 그 독립을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서 문명화가 필요했다. 여기서 문명화란 야만성을 탈피하는 것. 즉, 주술적 세계로부터 이른바 근대적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인에서 인으로 강에서 생으로의 인식론적 전환은 이 문명화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그 전환의 키를 학교교육, 교과서가 잡았던 것이다.
3. 문명과 독립의 수사학, 그리고 단군이라는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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