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분야에서 세종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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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자기 분야에서 세종 바라보기
1.국가경영과 기업경영의 차이
경영은 근대이후 재화와 서비스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 주로 적용되는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는 가정, 기업, 국가, 기타 공동체 모두 본질적으로 경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기업의 역할은 원자재, 에너지, 자본, 노동 등의 투입물을 사용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 팔고 그 대가로 이윤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기업에서의 경영은 지속적인 이윤창출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해 기업이 하는 모든 활동을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경우에는 목적과 역할이 다릅니다. 국가의 존재목적이나 역할은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어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지리적인 영역(영토) 내의 모든 국민과 재산을 보호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역할입니다.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치안, 외교가 기본이고, 또한 경제활동의 증진자이자 여러 경제주체간 이해조정자, 환경, 교육, 보건 등 국민의 복지향상자 등이 됩니다. 국가경영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역할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경영은 역할범위가 다양하고 폭넓으며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해조정이 어려우며, 다른 나라와의 외교나 치안까지 포함되므로 기업경영에 비해 더 복잡하고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업경영의 경우 효과적 효율적 기업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이 전개되도록 전략, 인프라/시스템, 인적/조직관리, 자금조달 및 관리, 리더십 등의 여러 노력/활동들이 최고수준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추구되어야 하고, 특히 CEO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임직원들이 능력과 재능을 겸비하면서도 동시에 주인의식을 갖고 의욕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어야 그 기업이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국가경영도 입법, 사법, 행정의 여러 의사결정자들이 최고경영자 즉 CEO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기업처럼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나, 현실적으로는 상호 대립되는 관점과 의견을 가진 정치집단간의 이해조정이 불가능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더 어렵고, 방대한 관료조직(공무원 조직)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게 하기에는 목적의식도 불분명하고 권위주의적인 조직관리 때문에 동기부여의 한계가 있는 등 기업만큼 효율성, 효과성을 제고하는 것이 쉬울 것 같지 않습니다.
2.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세종이라는 CEO
세종은 행운아였습니다. 14년 동안 세자로 있었던 큰형 양녕대군이 방탕하고 탈선행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평범한 왕자의 한 사람으로 일생을 살라야 했을 인물이었습니다. 양녕대군을 교체하더라도 그의 아들에게 세자지위를 물려야 한다는 어머니 원경왕후의 주장이 관철되었더라도 마찬가지 처지였습니다. 평소 아버지 태종이나 주위의 신료들로부터 셋째인 충녕대군이 국왕이 될 만한 재목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었던 덕택에 세자로 선택될 수 있었고, 세자가 된 지 2개월밖에 안 됐으면서도 무난하게 조선왕조 제4대 임금으로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양녕대군의 지지세력이 더 많았던 시점이어서 23세의 세종이 조선왕조 최고의 명군이 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세종은 잠재력이 뛰어난 청년이었습니다. 우선 뚝심과 집념, 추진력과 끈기를 그의 무인가문의 혈통을 통해 전해 받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통솔력과 용인술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태종과는 다른 타입이었습니다. 태종이 순발력과 임기응변에 능한 것에 비해 세종은 장기전에 강한 타입이었습니다. 세종에게는 전형적인 문인집안인 외가혈통의 장점까지 전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적호기심이 뛰어나 박학한 군구가 될 수 있었고, 탁월한 창의력까지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은 영명하고 과다성이 있으면서 타고난 성품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세종을 발탁한 태종의 선택은 매우 적절했습니다. 이성계가 창업주이고 태종이 1.5세라면 세종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본궤도에 올릴 2세 경영주가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종의 집권초기는 인내심과 자제력이 돋보이는 시기였습니다. 순조롭게 왕위에 올랐으나, 집권의 시작이 순풍을 맞은 돛단배 같지는 않았습니다. 14년 동안 세자로 있었던 양녕대군에게는 어머니 원경황후를 비롯해 폭넓게 지지세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세종을 축출하는 음모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세종은 국왕이면서도 상왕인 태종, 태상왕인 정종 등 윗사람을 깍듯이 모셔야 하는 고달픈 생활을 해야 했고, 중요국사의 경우 아직 병권을 넘겨주지 않은 상왕의 결재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명목상의 국왕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정종과 어머니인 원경왕후, 나중에는 태종의 상을 연달아 치르는 상주생활로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상주는 부모를 잘못 모시어 돌아가게 한 죄인이라는 것이 유교의 정신이어서, 고기를 먹지 못했기 때문에 과로에다가 섭생부족이 병을 부른 것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강력한 지원자인 장인 심온이 사약을 마시고 자진하는 등 상왕에 의해 처가가 몰락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현직국왕으로서의 비애와 갈들도 컸습니다. 세종의 정비인 소헌왕씨 심씨가 여러명의 왕자와 왕녀를 낳았기 때문에 폐비가 되는 운명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던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세종의 효도하는 마음과 인내, 적절한 처신이 없었다면 앞당겨진 권력이양이 오히려 화를 불러올 수도 있었습니다. 태종이 병권을 잡은 채 4년이나 병풍 노릇을 하고 주변정리를 계속했기 때문에 세종에게 안정적인 통치
참고문헌

『세종의 국가경영』, 김영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와조실록』, 박영규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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