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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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윗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다윗에 대하여 -
(1) 목동 다윗
다윗(Dauivd, David)은「사랑받는 자」라는 뜻으로, 다윗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유다 지파 이새의 막내 아들로 베들레헴에서 출생했다. 8형제 중 막내인데, 소년 다윗은 혈색이 좋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양을 지키고 있을 때, 덤벼드는 사자나 곰을 쳐 죽여 임무에 대한 충실성과 용기를 실증했다. 음악적 소질이 비상하여 이 무렵 수금을 잘 탄다는 것이 알려졌고, 전술한 바와 같이, 후에는 시도 많이 썼다. 사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베들레헴에 보내어 사울의 뒤를 이를 자로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였다. 그러나, 이 때 사울의 적의(敵意)를 일으키게 할까봐 아무런 공적 선언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 곳 장로들 앞에서 행해졌다는 점에 공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 기사에 한해서는 이 기름 부은 목적이 사람들에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새와 다윗에게는 말했음에 틀림없다. 이것은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제 1의 전기(轉機)이며,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크게 임하셨다. 그러나, 그는 일상자기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 사울을 섬긴 다윗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했으며, 우울병에 걸려 광적으로 발작을 일으키고는 했다. 사울은 다윗을 불러다가 음악으로 위안을 받고, 그의 인품도 또한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드는 자로 삼았다.
다윗이 집에 있을 때에 블레셋 사람이 유대에 침입하여 베들레헴의 서쪽 24km 지점에 포진했다. 사울은 이스라엘 군을 이끌고 이를 맞았다. 다윗의 세 형은 이 군대에 들어가 있었는데, 종군 6주일 후 아버지는 그들의 위문을 위해 다윗을 보냈다. 다윗이 전장에 이르러 형들에게 문안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싸움을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자가 항오에서 나와 도전하는 오만불손한 말을 듣자, 다윗의 마음은 끓어 올랐다. 이스라엘 군은 무서워 도망쳤고 사울 왕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과 딸을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하겠다고 현상을 걸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모욕을 제거해 주시리라 확신하고, 이렇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블레셋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 다윗은 사울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의 결심을 표명하니, 사울은 그에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축복하고, 자기 군복과 놋투구, 그리고 갑옷을 입히고 칼을 채웠으나, 그는 이를 사양했다. 골리앗은 무거운 투구를 입고 있어 동작이 둔하여 접근하지 않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윗은 매끄러운 돌다섯 개와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을 대적하러 나갔다. 하나님에게 대한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대적에게 향한 것이다. 골리앗의 큰 호통과 저주에 다윗은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하면서, 돌을 물매로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치자, 그는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윗이 달려가서 골리앗의 머리를 베니 대적들은 도망치고 이스라엘과 유다 군은 대승하였다. 그는 골리앗의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칼은 성막에 바쳤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나갈 때, 또 승리자로서 돌아왔을 때, 그가 누구 아들인가라는 질문은 다윗의 가계(家系)에 대한 사울의 관심에 관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딸을 주고, 그 아비의 집은 면세(免稅)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다윗이 자기 사위로서 부끄러울 것 없는 가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골리앗에 승리한 것은 다윗 인생의 제 2의 전기였다.
이때부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깊은 우정 관계를 맺게 되었다. 요나단은 그를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했다. 다윗이 사울의 시키는 모든 일을 지혜롭게 잘 처리하니 왕은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그의 명성때문에 사울의 질투를 받았다. 즉, 다윗이 개선할 때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여인들이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북을 치면서 환영했는데, 그들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뛰놀며 화창했다. 이 말을 들은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게 되었다. 나라를 자기보다 나은 자의 손에 주셨다는 사무엘의 예언이 다윗에게 실현된다고 본 사울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했다. 왕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창을 던졌지만, 다윗이 피하여 실패했다. 사울은 그를 두려워하여 멀리하기 위해 천부장으로 삼았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은 다윗을 사랑하였다. 사울은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블레셋 사람의 양피 100을 가져오면 딸을 주겠다고 말했다. 다윗도 미갈을 사랑했으므로 그는 블레셋 사람 200을 죽이고 그 양피를 왕에게 바치고 사위가 되었다.
다윗의 평판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사울의 두려움도 커졌다. 이렇게 되니 다윗을 없애려는 살해 의도는 공공연하게 되었다.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공공연히 내렸던것이다. 다윗을 사랑하는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려하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무슨 일이 생기면 알리겠다"고 하고 왕에게 나가서 다윗이 아무 죄가 없으니 죽이지 말라고 부탁했다. 사울이 아들의 말을 받아들여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말하므로 다윗이 다시 왕 앞에 있게 되었다. 그 후 전쟁이 다시 일어나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무찔렀다. 사울에게 악신이 접하자, 수금타는 다윗에게 그는 또 창을 던졌으나, 이번에도 이를 피한 다윗은 그 밤에 집으로 도망쳐 갔다. 다윗은 그 길로 사무엘을 찾아 라마 땅 나욧으로 갔으나, 추격의 손길이 그 곳까지 미치었다. 그리하여 다윗은 요나단에게로 도망쳤다. 요나단은 다윗을 에셀 바위에 숨겨두고, 월삭제의 축연에 나가 다윗을 변명해 주다가 아버지 사울에게죽을 뻔 했다.
(3) 쫓기는 다윗
다윗은 몇 번씩이나 사울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한 아슬아슬한 일도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으므로 모면했다. 그는 어떤 때는 사울의 생명을 구해 주기도 했다.
한번은 다윗과 그 일행이 동굴에 들어가 있는데, 사울이 잠을 자기 위해 그 굴에 들어왔으므로 그를 죽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지만, 기름부은 자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일행의 결행을 만류하고, 후일에 증거로 삼기 위해 겉옷 자락만을 가만히 벴다. 다윗은 그 후 사울에게 그 옷깃을 보이면서, 자기의 살의가 없음을 사울에게 애소하였다. 사울은 일시적, 또는 감정적이나마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또 한번은 자기를 추격하는 사울과 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거느리는 정병 3,000의 진에 잠입하였다가 취침하는 사울을 죽이라는 부하를 타이르고 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서 아브넬의 불충을 책망하였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그 부자(父子)를 위해 애가(哀歌)를 지었다.
(4) 유다왕으로써의 다윗
사울의 죽음으로 다윗은 유대 사람에게 왕으로 추대되어 헤브론에서 살면서 유다를 다스렸다. 때에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다른 11지파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2년 간양 자의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었으나, 이 전쟁은 이스보셋이 암살됨으로써 끝났다. 다윗의 헤브론 시대는 7년 반 계속 되었으며, 점점 강하여져 여섯 아내로 부터 여섯 아들을 얻었다. 이것은 가정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 다윗에게 대립시킨 것은 아브넬의 소위(所爲)인데, 그는 자만하여 사울의 첩과 상통하였는데 이스보셋이 이를 책망하자 아브넬은 다윗에게 충성키로 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베냐민인을 규합하여 다윗에게 귀순하였다. 그의 태도는 야비하나, 다윗을 이스라엘 전국 왕으로 추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했을 때, 다윗은 이를 슬퍼하여 장사하고 애가를 지어 불러 전 국민의 신뢰감은 더욱 두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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